[스포츠퍼즐] 아시안게임 복싱 전체급 석권, ‘편파판정’ 시비의 전말

입력2015년 07월 31일(금) 16:39 최종수정2015년 07월 31일(금) 16:39
김광선
[스포츠투데이 김광선의 복싱히스토리②] 한국 권투는 1950년 중반부터 중흥기를 맞기 시작한다. 그 주역은 송순천 선수였다.

송순천은 1956년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16회 멜버른 올림픽’에서 밴텀급으로 출전, 은메달을 따냈다. 이 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두 개의 메달을 받았는데 나머지 하나는 역도 라이트급에 출전한 김창희 선수가 목에 건 동메달이었다.

송순천의 은메달은 태극기를 앞세우고 출전한 올림픽에서 따낸 최초의 쾌거였다. 또 올림픽 권투에서 동양인이 거둔 최고의 성과인 최초의 은메달이기도 하다.

당시 현지에서 라디오로 송순천의 경기를 중계한 방송인들의 회고담에 따르면, 송순천의 은메달은 ‘금메달을 도둑맞은 은메달’이었다.

해머 펀치라고 불렀던 송순천에게 이길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는 게 방송인들의 전언이다. 금메달을 놓고 링에서 송순천과 맞붙은 상대는 독일의 베레트. 이 경기에서도 시종 파고 들어가 부수는 송순천 힘 앞에 베레트는 맥을 추지 못했다.

시합이 끝나고 판정을 기다리는 시간, 많은 관중들은 ‘코리아’를 연발하며 송 선수의 승리를 연호하고, 한국 임원들도 금메달을 자신했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베레트의 손이 올라갔다. 아우성치는 관중의 야유와 고함, 한국 최초의 금메달 꿈이 은메달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훗날 현지 중계를 맡았던 한 방송인은 “KO승을 거두지 않으면 판정에서 불리한 대우를 받던 약소국가의 설움이었다. 우리는 이때 더 강해져야 한다고 서로가 다짐을 했다.”라고 당시를 술회했다.

그 다짐은 이후 올림픽 등 세계무대에서 권투가 메달밭을 일구는 효자 종목으로 발돋움하는 결과로 열매를 맺었다.

이후 한국 권투는 18회 도쿄 올림픽에서 정신조(밴텀급)가 은메달, 19회 멕시코 올림픽에서 지용주(라이트 플라이급)의 은메달, 장교철(밴텀급)의 동메달로 성과를 이어갔다.

1980년대 들어와서 한국 복싱은 황금기를 맞는다. 1984년 제23회 LA 올림픽에서 신준섭선수가 75kg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한다.

한국 권투 최초의 금메달 획득이라는 성과를 이뤄냈지만, 두고두고 LA올림픽은 ‘편파판정’ 시비로 권투인 사이에서 흉을 잡히는 대회란 오명을 벗지 못했다.

LA올림픽 당시 한국 권투 대표들은 역대 최강의 실력을 갖고 있었다. 금메달을 쓸어 담을 것이란 전망을 외신은 다투어 보도했다.

이에 복싱 강국을 자신하던 미국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금메달 유망주를 예선에서 탈락시키는 졸렬한 방법을 동원했다. 필자도 그 제물 가운데 한사람이다. 문성길, 김동길 선수도 마찬가지였다.

LA올림픽 당시 국내외에서 모두 필자를 가장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았다. 그런데 첫 경기에서 지고 말았다. 1차전에서 미국의 폴 곤자레스와 맞붙었는데, 경기에서 분명 이겼는데도 결과는 판정패, 예선 탈락이었다. 외신들도 내 경기 결과를 ‘충격의 판정패’라고 썼다.

연이어 문성길, 김동길 선수 또한 예선에서 고배를 마시자 여론은 들끓기 시작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편파판정’이란 것이다. 결국 미국은 한국을 잠재우기 위해 신준섭 선수에게 금메달을 주었다. 이 메달이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이 되었다. 그렇게 선수들은 분통을 터트렸고, 이를 악물며 다음 대회에서의 승리를 기약했다.

드디어 1986년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 복싱은 전 세계적으로 아주 획기적인 사건(?)을 일으킨다. 복싱 종목 전체급(12체급)을 휩쓴 것이다. 실로 대단한 경기였다. 이 쾌거를 ‘사건’이라고 하는 이유는 실상 국내의 전국 대회에서도 전체급을 석권하는 일조차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대회에서 필자는 4번의 경기에서 4번 모두 KO승으로 금메달을 획득한 데 이어 최우수 복서로 뽑히는 영예를 안았다.

86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복싱은 첫날 6체급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자연히 다음날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부담감은 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경기장 주변에서는 “상대선수에게 메달을 양보해야 않을까”하는 우려의 소리도 따라 나왔다. 자칫 하다가는 상대국으로부터 ‘주최국의 편파판정’이란 불만도 들을 수 있는 형국이었다.

따라서 선수들은 ‘KO승’을 거두어야만 ‘판정시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각오를 다지게 되었고, 이 각오로 링에 선 끝에 나머지 선수들 모두가 금메달을 따내, 12체급 석권이란 전대미문의 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 필자 : 김광선
83 로마월드컵 금메달리스트 / 86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 87 세계월드컵 금메달리스트 / 88서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 / 대한체육회 선수위원, 육군사관학교 교수, 국군체육부대 감독 역임 / 현 국가대표선수회 이사, KBS 해설위원 / 훈장 - 체육훈장 기린장(86), 백상체육대상(86, 88), 체육훈장 청룡장(88)

스포츠투데이 김광선 KBS 해설위원 SPORTS@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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