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퍼즐] ‘효자’가 ‘천덕꾸러기’된 한국 복싱의 기막힌 사연

입력2015년 08월 12일(수) 17:04 최종수정2015년 08월 12일(수) 17:04
[스포츠투데이 김광선의 복싱히스토리] 88 서울 올림픽이 다가왔다. 필자도 의지를 남달리 했다. 무엇보다 1984년 LA올림픽 1회전 탈락이라는 수모를 털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금도 LA올림픽을 생각하면 울화가 치민다. 어이없는 편파판정의 희생물이었다. 그때까지 한국은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는 변방국이었다. 세계 복싱계가 힘 있는 국가의 입김에 판정이 좌지우지 되던 시대였다.

이제 안방에서 치러지는 대회에서 확실한 실력을 보여줘야 했다. 역으로 편파판정이란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더욱 강해져야 했다. 죽기 살기로 훈련에 매달렸다. 뛰고 또 뛰었다. 작은 키(160cm)와 서양 선수들에게 뒤처지는 체력을 훈련으로 극복할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88서울올림픽 권투 플라이급 국가대표로 뽑혔다. 당시만 해도 권투에서 국가대표가 되는 과정은 쉬지 않았다. 특히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이 있는 경량급은 경쟁이 치열했다.

올림픽 직전 복싱 대표팀에서는 12체급 30여명의 선수가 집중 훈련을 받고 있었다. 필자의 뒤를 받칠 플라이급 상비군 선수도 2명이나 있었다. 상비군에게 밀리면 언제든 국가대표 자리를 내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시절이 그립다. 그때 상비군은 요즘과는 달랐다. 상비군의 어느 선수든 국제대회에 나가면 전원 입상할 정도로 최고 수준의 실력을 갖고 있었다. 그 정도로 한국 아마추어 복싱 수준이 높았다.

필자는 ‘올림픽 재수생’이란 세간의 평가가 듣기 싫었다. 이를 악물고 링에 올랐다. 안방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필자는 경쟁자들을 차례로 쓰러트리며 결승에 올랐다. 결승전 상대는 동독 선수 안드레아 테브스.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우선 필자보다 키가 16cm나 더 튼 데다 기술도 좋았다.

위를 올려다보고 경기를 치르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테브스가 매일 10km를 뛰었다면 필자는 20km를 뛰었다. 많은 훈련을 한 만큼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자신감이 가득했다. 예나 지금이나 링에 오른 선수의 가장 중요한 승리 요건은 무엇보다 ‘자신감’이다. 요즘 선수들에게는 이 ‘자신감’이 부족하다.

테브스와는 첫 만남이 아니었다. 1987년 유고슬라비아에서 열린 월드컵대회에서 맞붙은 경험이 있었다. 그때 관전자들은 필자의 일방적 공격에 압도적 경기였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결과는 3대2란 근소한 승리였다. 편파판정에 맞서려면 완벽한 승리가 필요한가를 깨닫게 한 경기였다.

서울올림픽에서 필자는 자신감을 토대로 필사의 정신으로 그를 몰아붙였다. 마음의 한을 풀듯이 상대 선수를 퍼펙트하게 몰아붙여 4대1 판정승을 거두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서울올림픽에서는 라이트미들급의 박시헌 선수도 미국의 로이 존스 주니어를 판정승으로 물리치고 금메달을 따냈다. 그리고 헤비급의 백현만 선수가 은메달, 페더급의 이재혁 선수가 동메달을 땄다.

여기까지였다. 이후 한국 복싱은 올림픽에서 단 한 개의 금메달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 88서울올림픽에서의 금메달이 마지막이다.

1992년 바르셀로나에서 라이트헤비급의 이승배가 은메달,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페더급의 조석환 선수가 동메달,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웰터급의 김정주 선수가 동메달,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라이트급의 한순철이 은메달에 그쳤다. 서울올림픽 후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한국 복싱에서 금메달은 사라졌다.

올림픽에서의 메달 기록만으로도 “왜 복싱인들의 반성이 필요한가?”란 질문에 대한 답변은 충분하다.

복싱연맹의 탁상 행정과 편싸움 때문에 좋은 선수들이 뽑히지 않고 있다. 좋은 선수들이 나오지 않으니 금메달 역시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요즘 후배 선수들에게서는 죽기 살기로 싸워 이겨야하겠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 부족한 체력을 기술로 해결하려는 ‘쉬운 권투’의 경향이 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이젠 모두 다 같이 노력해야하는 시점이다. 연맹과 선수들은 행정의 도움과 선수들의 강한 뚝심으로 리오 올림픽에선 금메달이 나오길 바랄뿐이다.

권투의 인기가 많이 시들어버린 요즘이다. 굶주린 배로 성공을 위하여 샌드백을 두드리던 시대도 아니고, 그렇게 해서 돈을 벌 수 있는 시절도 아니다. 유사영역으로 진입한 종합격투기의 인기에 밀리고 있는 형편이다. 하지만 권투는 격투기의 기본 중 기본 종목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 필자 : 김광선
83 로마월드컵 금메달리스트 / 86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 87 세계월드컵 금메달리스트 / 88서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 / 대한체육회 선수위원, 육군사관학교 교수, 국군체육부대 감독 역임 / 현 국가대표선수회 이사, KBS 해설위원 / 훈장 - 체육훈장 기린장(86), 백상체육대상(86, 88), 체육훈장 청룡장(88)

스포츠투데이 김광선 KBS 해설위원 SPORTS@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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