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법·차별·모순 만연"…방송가 52시간제, 현장의 아우성 [ST기획②]

입력2019년 05월 11일(토) 13:02 최종수정2019년 05월 07일(화) 14:11
[스포츠투데이 공동취재기획팀] 방송가가 떠들썩하다. 7월 1일부터 무조건적으로 정착·시행돼야 할 '주 52시간 근무제'와 직면했기 때문이다. 업종 특성을 고려해 지난해 7월부터 1년간 '주68시간 근무제' 유예기간을 얻어냈으나, 뾰족한 수 없이 시행된 정책이 관계자들의 목을 조른 모양새다.

1년 유예기간 중 10개월이 지난 현시점. 이상적인 그림은 근무시간 단축 시스템 굳히기 작업에 들어가 일과 삶의 균형, 즉 '워라밸'(Work-life balance)의 질이 높아졌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곳곳에서 비명이 새어 나오고 있다. 구색 갖추기용 편법이 생겨났고, 각자의 입장차로 인한 모순이 만연한 상황. 기획사, 드라마, 예능, 영화 현장 관계자들의 아우성에 귀기울여 봤다.
사진=각 방송사 로고

◆ "드라마 쪽대본으로 52시간은 불가능…"

얼마 전 드라마 제작에 임했던 익명의 PD는 스포츠투데이에 "법 도입 이후 제작을 시작해 많이 혼란스러웠다. 기존보다 3개월 일찍 촬영을 시작해야 했다. A와 B팀으로 쪼개 근무 시간을 지켜보려 애썼으나, 결과적으로 후반부 정확히 지켜지지는 못했다"며 "일주일에 120분 분량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근복적으로 큰 틀을 바꾸거나,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지 않는 이상 불만과 혼란을 계속해서 야기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후배 연출진, 배우, 제작사 눈치를 보느라 힘들었다 토로했다. 법 도입 이후 68시간에 맞춰 촬영했으나, 후반부로 갈수록 현실의 벽에 부딪힌 것이다. 해당 PD는 현시점을 '과도기'라고 표현했다. 이어 "사전제작 혹은 사전 대본 탈고 없이는 드라마 제작에 있어 52시간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해당 PD는 "현장에서 메인 PD의 역량에 따라 빨리 끝나고 늦게 끝나고의 차이가 있다. 근무 시간 단축 취지에 적극 공감한다. 촬영 초반부 '이렇게 빨리 마쳐도 되나'싶을 정도로 모두가 기뻐했고, 컨디션 유지에도 용이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법이 제시되지 않는 한 어디선가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올 게 뻔하다"고 토로했다.

◆ 예능 제작팀 52시간? "꿈도 못 꿔"

한 예능 프로그램 PD는 52시간 근무제와 관련한 물음에 코웃음부터 쳤다. 그는 "예능 바닥에 그 법이 온전히 시행되려면, 한참 멀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시행해야 할 윗선부터 혜택을 누려야 할 말단까지 가진 비슷한 생각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당 예능 PD는 야외 버라이어티 예능프로그램 제작팀에 속해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기획, 섭외, 촬영, 편집을 수없이 반복해 2주마다 1주 분량을 맞춰야 하는 방식 앞에 52시간제는 '속수무책'이라고. 그는 "예상치 못할 천재지변으로 섭외된 장소가 어긋나는 것은 비일비재하며, 심지어 편집까지 마쳐둔 출연진의 사생활 문제로 급히 편집에 나서야 하는 일도 생긴다. 당연하게 밤샘을 강행해 방송일자를 맞춰야 한다. 그런 식의 일들이 겹치고 쌓이다 보니, 52시간은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이 당연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윗선에서의 노력도 있었다. 그는 "지난해부터 68시간, 더 나아가 52시간에 맞춰보겠다며 간간히 책임자 회의가 열렸다. 하지만 그때뿐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예능 프로그램은 팀으로 쪼개지는 경우가 많다. 내가 속한 프로그램은 3팀으로 운용된다. 당시 회의를 마친 팀장들의 공지 사항이 각각 달랐다"고 토로했다.

이어 "우리 팀의 경우 보름 동안 정해진 하루 14시간을 넘겨 일해 분량을 마친 뒤 주52시간을 계산해 휴가를 받는 식으로 공지가 내려왔다"면서도 "정확히 한주 분량만 지켜졌다. 이후부터는 휴가 기간에 대부분이 출근해 기획회의와 나머지 편집 등 내근을 실시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방송 분량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도 이의 제기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또 "한 팀 안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직급에 따라 적용 시스템이 다르다. 타 예능 프로그램에서 일하는 케이블 방송사와 종합편성 채널, 지상파 동료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어보니 모두가 다른 시스템으로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불가피하게 근무시간을 어겨야 하는 긴급상황이 생겼을 시, 주먹구구식으로 넘어가는 행태가 여전히 만연해 있는 것이다. '휴가'라 불리지만, '내근'을 해야 하는 식의 편법도 있었다. 직급과 소속별로 생기는 차별 또한 존재하며, 시스템의 한계를 알고서 볼멘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모순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사진=영화 국가부도의 날-돈 스틸

▲본사진은 글의 내용과 무관
◆ 영화 제작팀 "시급 줄여 인건비 맞추는 편법"

영화판의 경우 방송 제작보다는 근무시간 단축 시스템 도입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애초부터 영화는 제작을 후 상영하는 방식이었기에 쪽대본 형식으로 시간에 쫓길 필요가 없었기 때문. 한 영화제작 관계자는 자신이 속한 팀은 정책이 시행되자마자 유예기간 없이 곧장 52시간제를 도입해 운용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더욱 빠른 시스템 적응을 위해 구축한 방식이다. 총 책임자의 의지가 피력된 사안이었다. 현재까지 규정대로 잘 시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전원 사전 공지'를 재차 강조했다. 그는 "단축 도입 이후 책임자 전원을 불러 설명하고 공지했다. 이후 전 직원 재 계약시 근무시간 관련 명시도 확실히 시행되고 있다"며 "촬영 중 1~2시간 초과될 경우 스태프 전원 동의 하에 추가 시급을 지불하고서 촬영을 마친다. 휴무일도 전과는 다르게 최대한 빨리 공지한다. 불가피한 상황이 생겨 휴무일 변경이 예상되면 제작부서가 최대한 빨리 알리려 노력 중"이라고 전했다.

문제는 돈이다. 근무 시간을 확실히 명시해 초과 인건비가 발생하고, 이는 제작비 상승으로 이어졌다. 관계자는 "대신 시급이 줄어들었다. 영화 스태프들은 작품마다 자신의 경력에 맞게 계약을 하고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근무시간 단축법 도입 이후부터는 전반적으로 평소 받던 시급보다 낮게 책정됐다. 초과된 시간을 임금으로 처리해 오롯이 지급하게 되면 제작비 상승을 감당할 수 없기에 생겨난 일종의 편법"이라고 설명했다.

안타깝지만, 영화판 역시 모두에게 통용된 이야기는 아니었다. 관계자는 "감독마다, 책임자마다 영화 현장에도 완벽히 도입된 시스템은 아니다. 특히 중간급 연출부와 제작부는 촬영이 없는 날에도 유야무야 불려 나가 일을 하는 일이 있다. 공식적인 회의 이외에 업무로 치기에는 애매한 상황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사회생활의 일환이라 여기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관계자는 52시간제 도입 취지에는 적극 공감을 표했다. 그는 "스태프로 일하며 감내하고 살던 것이 '워라밸'이다. 법 도입 이후 피부로 와 닿아 대부분이 반기는 분위기"라며 "스태프의 컨디션에 따라 촬영의 질이 높아지는 당연한 일이다. 피로도에 의한 안전 사고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취지에 깊이 공감하고 모든 현장에 정착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 스타들에게 52시간이란?

방송, 영화에 출연하는 스타들의 입장은 또 달랐다. 52시간이 고역이라는 것. 영화 관계자는 "배우들의 요구는 밤을 새도 좋으니 몰아서 촬영한 후 다음 스케줄에 보내주길 바라더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드라마 현장에서 일하는 배우 기획사 관계자는 "배우 입장에서는 몰아서 촬영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며 "스케줄 조율과 감정선이 가장 큰 이유다. 하루 만에 모두 촬영할 수 있는 장면이 2~3일로 쪼개지더라. 그렇게 되면 광고 촬영 혹은 다른 작품 촬영을 위해 잡아뒀던 일정이 어긋날 수밖에 없다. 연기하는 입장에서 감정선도 깨지기 마련"이라고 토로했다.

이렇듯 드라마, 예능, 영화, 배우 등 현장 사람들 모두가 가지각색의 입장과 고충을 지녔다. 취지에는 적극 공감하지만, 아직은 많이 낯설고 어설픈 감이 있다는 것이 대부분 공감하는 대목이다. 영민한 대처와 발 빠른 지원으로 하루빨리 편법, 차별, 모순 없는 근무 단축이 이뤄져야 마땅해 보인다.

[스포츠투데이 이호영, 김샛별, 김나연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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