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대한이 가는 길, 그 값진 가치 [인터뷰]

입력2019년 10월 16일(수) 18:51 최종수정2019년 10월 16일(수) 18:52
영화배우 지대한 인터뷰/사진=G브라더스 컴퍼니 제공
[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배우 지대한은 스스로를 대단치 않은 배우라 해도, 이미 그가 걸어온 평탄치 않고 굽이 굽이 험난한 길은 어느덧 견고한 기반이 돼 다른 누군가가 쉬이 걸어갈 길이 되고 있다. 지대한이 가는 길, 그의 열정은 지치지 않았고 목표는 뚜렷했다.

지대한은 요즘 정신없이 바쁘다. 부산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속초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다. 최근 열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배우 개인의 행사인 지대한의 밤을 개최하고, 서울에선 영화 촬영에 한창이고, 속초에선 제 이름을 딴 영화제가 열리기 때문.

10월 17일 열리는 지대한의 영화제 이름은 '대한 루트 B급 영화제'다. 배우 스스로는 '지대한의 B급 영화제'란 애칭으로 부른다. 지대한은 "헐리우드 B급 장르 영화들은 거대 자본의 구애를 받지 않고도 실험정신과 창작 의지가 불타는 영화들을 만들어내고 이게 곧 하나의 장르"라고 말문을 열었다. '대한 루트 B급 영화제'는 영화제의 주최, 주관 모두 지대한인 이색 영화제. 지대한 맥주 2호를 만든 속초 맥주 회사 크래프트 루트와 함께 기획된 행사다. 지대한은 "우리나라에 많은 영화제들이 있지만, 지자체나 거대 자본의 도움 안 받고 저희가 의기투합해보자 했다. 한국에도 독특한 실험정신을 갖고 영화를 만드는 젊은 독립영화인들이 많다. 하지만 영화제 출품이 안 되거나 상영이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친구들이 나중에 큰 감독이 되고 한국 영화를 이끌어가는 층이 되는 건데 기회가 없어서 그 시작을 열어주고 싶은 마음에 아주 조그마하고 겸손한 영화 잔치를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지대한이 꿈꾸는 낭만은 이 영화제에도 녹아들었다. 바다를 배경으로 보이스카웃 야영장처럼 텐트를 쳐놓고 야외에서 영화도 보고, 지대한 맥주도 마시고 가을의 낭만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영화제다. 이번 영화제는 지대한이 출연한 독립영화가 상영된다. 지대한은 "제가 북 치고 장구치고 다하는 거"라며 너스레지만, 영화제 메인 상영작은 수시로 갑질을 일삼는 회장의 횡포에 분노가 폭발한 운전기사의 대결을 그린 영화 '접전'이다. 사회에 만연한 온갖 가진 자들의 무례하고 뻔뻔한 '갑질', 이를 향한 통쾌한 응징이란 메시지가 담겼다. 지대한은 "거대 자본이 들어간 상업영화들에 비하면 퀄리티가 떨어지겠지만, 우리가 하고 싶은 주제가 정확하게 전달되는 영화"라고 독립영화의 매력을 소개했다.

지대한은 누구보다 'B급'으로 통용되는 비주류 정서의 매력에 미혹된 배우다. 그의 삶이 그랬고, 그가 걸어오고 추구하는 길이 바로 모든 비주류들의 찬란한 가치를 알리는 것이었다. 그는 "사실 수많은 후배 배우들, 단역 배우들이 현장에 나갔을 때 다들 느낄 거다. 초라한 내 모습이 슬프다. 단역 배우라 무시받고 설움을 당한다. 요즘은 많이 좋아졌다고 해도 스스로 위축이 많이 될 거다"라며 "언제 뜬단 보장도 없이, 언제 배우로 자리 잡는단 기약도 없이 청춘을 바치는 건데 주변의 '언제 뜨냐, 밥은 먹고 사냐'는 말을 수십 년을 들어야 할 때도 있다"고 털어놨다. 그 또한 그 시절을, 그 경험을 족히 겪어봤다. 하지만 그는 생각을 달리 했고, 기꺼이 이를 받아들였다. 지대한은 "전 죽을 때까지 배우를 할 거고, 배우를 그만두겠단 생각을 아예 지워버렸다. 죽기 전 하루를 살아도 멋지게 배우를 할 거라고 마음 먹었다. 그래서 행복하다고 스스로에 세뇌를 했더니 효과가 있더라"고 밝혔다. 간혹 설움과 슬픔이 밀려오더라도 스스로 더 크고 성숙한 배우가 될 수 있는 자양분이라며 위로했다. 그렇게 살아왔더니 어느덧 배우 인생 30년이 지나 있었다고. "뒤돌아보니 배우로서 30년이 돼 있었고, 정신 차려보니 나를 좋아하는 많은 팬들이 생겼더라. 그게 배우 생활하며 느끼는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더라."

어린 시절 그는 해사고등학교를 나와 항해사를 꿈꿨다. 당시, 항해사 생활을 할 땐 웬만한 대기업 임원급 월급을 받았다. 그랬던 제가 마도로스 꿈을 포기하고 영화배우를 한다고 해서 어머니는 그렇게 걱정을 하셨단다. 지대한은 "어머니께서 늘 '니가 뭔 짓거리를 하노'라며 항상 안타까워하셨는데 최근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 있었던 '지대한의 밤' 행사에 처음으로 오셨다. 그때 제가 찍은 영화가 100편 이상이 되고, 저를 좋아하는 많은 팬들이 있고, 저를 도와주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감동하셔서 우시며 '고생 많이 했겠네' 하시더라"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그렇게 울컥해 저도 함께 펑펑 울었단다.

이렇게 돌아보니 대단한 배우는 아니어도, 자신을 위해 우정과 의리를 보이며 어디 가서 기죽지 말고 배우 생활하라고 '지대한의 밤' 행사를 마련해주는 친구들이 있고 저를 알아보고 반가워하는 팬들이 있어 뿌듯하단 지대한이다. 특히 한국영화촬영감독협회가 주최하는 올해 황금촬영상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을 때의 감격을 잊지 못한다. 그는 "제가 독립영화로 상을 받았는데 카메라 감독님들이 주는 상이어서 더 울컥했다. 제가 과거에 함께 고생하며 만났던 분들이 이젠 영화계를 이끌어가는 힘 있는 감독님들이 되셔서 상을 주신 것"이라며 "제가 영화배우로서 밑바닥부터 걸어왔던 걸 다 봐오셨던 분들이다. 그분들이 제가 걸어온 길을 인정해주신 거라 생각하니 많이 울컥했다"고 밝혔다.

비록 자신이 대단한 스타는 아닐지라도, 한 길을 묵묵히 잘 걸어왔구나 생각해서 많은 감정이 몰려들었단 지대한이다. 그는 "이 길을 저보다 먼저 가시고 있는 선배님, 그리고 함께 뒤따르시고 있는 후배님들께도 경의를 보낸다"고 했다. 그리고 앞으로 30년은 더 이 길을 가야 하니 절대 초심 잃지 말고 스스로에 "변하면 죽는다"고 되뇐다고. 그의 바람은 "어쨌든 지대한 이름을 건 영화제도 나왔고, 맥주도 나왔고, 부산국제영화제 안에서 지대한의 밤이란 행사도 한다. 그렇게 제 이름을 걸고도 부끄럽지 않은 좋은 배우가 되는 것이 꿈이다. 죽고 나서도 '지대한이라는 광대 고놈, 참 물건이었어. 참 유쾌했던 것 같아'하는 기억을 가졌으면 하는 것"이란다. 그리고 저가 걸어왔던 이 길을 어떤 후배라도 쫄래쫄래 따라와서 멋있는 배우가 되길 바란다고, 이를 위해 아낌없이 지지할 것이라고 응원했다.

지대한이 이처럼 비주류의 정서를 사랑하고, 수많은 단역 배우들을 응원하는 이유는 그의 배우로서의 신념과 의리 때문이다. "제가 영화배우로 살아오며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사실 성공하거나 자리를 잡으면 꼭 어떤 형태로든 제가 받은 고마움을 돌려 드려야지 생각했는데 어느 세월에 뜨고 스타가 되나 싶더라"며 눙을 치지만 "그건 안 되겠어서, 더 늦기 전에 정열이 사라지기 전에 제 형편에 맞게 많은 영화인들 후배들에게 기회를 마련해주고 싶은 것"이라는 속 깊은 그다.

이처럼 지대한은 배우로서의 기조가 한결같은 사람이다. 이토록 자신이 열망하고 동경하는 일을 즐기며 애틋이 사랑하고 이 기쁨을 나눌 줄 아는 배우 지대한이다. 그는 비록 자신을 한없이 낮출지라도, 이미 그가 걸어온 발자취는 백 년의 한국 영화사 중 30년을, 그리고 100편의 작품에 달하는 족적을 남긴 것은 자명했다.

[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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