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공유, 부드럽고 강인한 용기 [인터뷰]

입력2019년 10월 22일(화) 16:02 최종수정2019년 10월 22일(화) 16:02
영화 82년생 김지영 공유 인터뷰/사진=매니지먼트 숲 제공
[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배우 공유는 용기 있는 자다. 부드럽지만 강인한 소신으로 제 뜻을 피력하고 다름을 인정할 줄 아는 그의 본질은, 그가 택한 작품만 봐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누적 판매 100만 부를 돌파한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82년생 김지영'(감독 김도영·제작 봄바람영화사)은 1982년 태어나 2019년 오늘을 살아가는 김지영(정유미)의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영화는 지영의 삶, 그 현재와 과거를 오간다. 남편 대현 역할은 중심에 서질 않는다. 지영의 곁에서, 뒤에서 지탱하고 연민하며 아픔을 공감하는 조력자이자 동반자다. 뒤에서 묵묵히 무게 중심을 잡는 존재를 공유는 물 흐르듯 자연스레 연기했다. "현실 남편 연기가 재밌고 편했다"는 공유는 "어떻게 보면 영화는 톤이 다운돼있는데 이상하게 현장에서 몸이 가볍더라"고 털어놨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도 제 분량은 크게 다르지 않았단다. 그럼에도 그가 기꺼이 작품을 택한 이유는 섬세한 영화의 결이 좋았고, 이야기에 끌렸기 때문이다. "공감이 안 됐다면 결정하지 않았을 것"이란 그는 특히 엄마의 삶을 공감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시나리오를 본 뒤 모친에 전화해 "엄마는 나를 어떻게 키웠어?"를 제일 먼저 물어봤던 그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희생을 강요당하는 엄마의 삶에 인간으로서 연민하고 자식으로서 미안함과 감사함이 든 탓이다. 공유는 "그땐 다들 그렇게 사니까 하소연도 못하고 결혼해서 아이들 낳고 살다 보니 정작 엄마의 삶이 없다. 이렇게 억울한 일이 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자식들은 더 나은 세상에서 좋은 것들을 바라보며 살 수 있도록 키워주신 것"이라고 했다. 저 또한 엄마의 희생이 당연하다고 말해오던 사회 정서 속에서 자란 사람이지만, 독립된 성인으로 살아가면서 달라진 가치관을 갖게 됐단다. 그래서 이번 영화를 촬영하며 "저희 세대보다 더 차별적인 세대에서 자랐던 부모님이 나를 이렇게 키워주신 것이, 마흔한 살에 새삼 대단한 일이라 느껴져 감사하다고 말했다"는 공유다.

공유는 영화를 찍으며 가족 생각이 유달리 많이 났다. 그는 "아버지가 전형적인 경상도 분이시다. 할아버지 때부터 가부장적인 세대였다. 어렸을 땐 아버지가 비합리적이고 권위적인 것처럼 느껴져 싫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꽤나 친구처럼 제게 대해주셨던 분이더라"며 "제게 세 살 터울의 누나가 있고 누나 얘기도 들어봐야겠지만, 우리 집은 뭔가에 치우쳐져 있는 느낌은 아니었다. 아들과 딸의 개념보다 '누나니까 동생에 양보해'라는 느낌이었다. 또 제가 좀 컸을 땐 누나한테 대든다고 아버지께 엄청 혼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이처럼 공유에겐 가족에 대한 먹먹함과 소중한 향수를 느끼게 한 영화였다.

하지만 최근 사회적으로 양극화된 젠더 이슈로 인해 영화는 제작 단계부터 논란에 휩싸이며 본질 잃은 시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를 두고도 공유는 떳떳한 제 신념을 밝혔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관점을 무시하거나 틀렸다고 얘기할 순 없다. 각자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여러 의견이 나오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라면서도 "일방적인 비난, 악의적인 비난은 안타깝다. 제 상식의 기준에서 이는 결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말하길 진짜 용기는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란다.

공유는 어느 특정한 젠더의 시선으로 영화를 보지 않았다. 그는 오직 '가족'이란 본질의 키워드를 봤다. 그는 "남녀가 아니라 사람에서 시작된 거다. 김지영이란 한 사람을 따라가다 보니 주변의 사람들이 보이고, 그 사람들은 어디서 많이 본 사람들인 거다. 이 사람들이 속해있는 사회는 내가 사는 사회와 비슷했다. 연쇄적인 시나리오가 자연스러웠고, 여기에 배우들이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을 해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82년생 김지영의 이야기를 따라가지만 결국 남녀를 떠나 인간의 얘기라고 생각했고, 스스로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여태껏 살며 접하고 느꼈던 부분들과 영화 속 지영이 느끼는 감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사회에서 각자 역할들 하느라 개인이 함몰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걸 스스로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고, 눈치채고 알고 있어도 이 상처를 쉽게 토로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지 않나"라고 했다. 극 중 지영이 "왜 상처를 주지 못해 애를 쓰냐"는 대사는 특히 더 공감했다. 이는 "제가 세상을 향해 하고싶었던 말이기도 하다. 본질적인 부분이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다르지 않았다"고.

작품에 깊게 공감한 탓인지, 오히려 현장에서 연기할 땐 그토록 편했단다. 원래 힘 빼고 자연스러운 연기를 좋아하기도 한단 그는 "감독님께서도 대현이란 인물에 어떤 테두리를 강요하지 않고 믿음을 주셨다. 부수적으로 정유미 씨와 작품을 많이 했고, 상대 배우가 어떻게 할 지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어서 더 편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캐릭터에 공감한 탓도 컸다. 공유는 "저라는 사람과 유사점이 많았다. 저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할 수도 있는 게 배우들이지만, 저는 저와의 교집합을 본다. 그렇게 접근한 캐릭터라 영화 속에서 더 진폭 시키고 싶었다"고 했다.

가장 격하게 감정의 진폭을 느낀 신은 아내에게 저만 알고 있던 사실을 말하는 신이다. 공유는 "제가 그때 고개를 못 든다. 연기하면서도 엄청 슬펐다. 제가 우는 모습을 카메라에 보이는 것보다 중요한 건 대현이 느끼는 감정이었다"며 "대현도 딱했다. 혼자 끙끙 앓다가 처음으로 그 속내를 아픈 아내 앞에서 토로한다는 건 굉장히 큰 감정일 거다. 그래서 감정이 북받쳐 오르고 주절주절 거리다 무너진다. 죄책감 때문에 아내를 똑바로 못 보겠더라"고 했다. 예상치 못했던 눈물 신도 많았다. 이런 감정의 파고를 겪는 건 제게도 의외였단다.
사진=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

앞서 천만 영화 '부산행'부터 '밀정', 드라마 '도깨비'까지 쉼 없이 달렸던 그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많이 지쳤었다고 털어놨다. "집중해야 하고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단 생각으로, 스스로 괜찮다며 달려가고 있는데 많이 지친 거다. 이후 2년을 쉬었고 그 시간이 제겐 스스로를 돌아보고 치유하는 좋은 시간이었다. 그때 만난 게 '82년생 김지영'이었다"는 그는 "제 좋은 에너지를 담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고 고백했다.

공유는 생각이 깊고 반듯한 가치관이 잡힌 배우다. 그럼에도 그는 "저도 어떨 땐 굉장히 편협한 부분이 존재한다. 제가 조금은 특수성을 지닌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 우물 안 개구리일 수 있고 시야가 좁을 수도 있다"고 성찰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제가 최대한 행하려는 노력은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고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함부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배척하지 말자는 거다. 그 노력은 용기 있는 자가 할 수 있고, 저도 그렇게 용기를 가지려 노력한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그렇게 노력하며 나이 들고 싶은 바람을 드러낸 그의 소신은 넘치게 가치로웠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공유 인터뷰/사진=매니지먼트 숲 제공


[스포츠투데이 한예지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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