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명이 악역을 만났을 때 [인터뷰]

입력2019년 11월 29일(금) 09:34 최종수정2019년 11월 29일(금) 09:35
유재명 나를 찾아줘 / 사진=워너브러더스 제공
[스포츠투데이 우다빈 기자] 배우 유재명이 지독한 캐릭터를 만났다. 유재명은 단순한 악역으로 스러져 갔을 한 캐릭터에 그만의 색채를 입혀 숨을 불어 넣었다.

영화 ‘나를 찾아줘’(감독 김승우·제작 26컴퍼니)는 6년 전 실종된 아들과 생김새부터 흉터 자국까지 똑같은 아이를 봤다는 의문의 연락을 받은 주인공이 낯선 마을로 향하면서 겪는 이야기다. 제44회 토론토 국제영화제 공식 초청작이다.

유재명은 극 중 작은 해안 마을 파출소에 근무하는 홍경장 역을 맡았다. 그는 정연(이영애)를 경계하며 스릴러의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린다. 그간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비밀의 숲’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해온 유재명은 이번 작품 역시 완벽한 캐릭터 소화력으로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먼저 유재명은 작품을 본 감상으로 “시나리오를 알고 촬영을 했지만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정연을 따라가다 보면 감독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잘 전달된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고전을 한 덕분에 완성도가 높다. 다만‘겨울왕국2’와 싸우자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매력이 있다는 뜻”이라 설명했다.

그러면서 유재명은 ‘나를 찾아줘’에 대한 무한 애정을 드러내며 “영화의 매력 중 하나가 사람을 즐겁게 해준다. 어떤 영화의 한 부분은 현실을 잘 상징해서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 영화는 매력이 있다. 극 중 마을 사람들이 관객들로부터 공분을 산다. 이는 그들이 악인이어서가 아니라 현실적이어서 전해지는 감정”이라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나를 찾아줘’에서 정연과 대립점에 있는 마을사람들은 그들만의 논리로 움직이며 보는 이들로 하여금 불쾌감을 자아낸다. 이를 두고 유재명은 시사회 당시 “마을 사람들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어른들을 빗댄 사람들”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이에 유재명은 “홍경장은 평범한 인물이다. 그저 큰 사고 없이 작은 공동체가 흘러가길 바라기 때문에 정연이라는 낯선 타자의 등장에서 질서가 깨지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내가 말하고자 했던 ‘어른’이라는 표현은 특정 직업이나 세대를 말하기보다는 보편적인 성격을 갖는다. 나의 안타까움에 연대하지 않는 인물의 본성을 설명했다. 아이 혹은 약자를 자신만의 질서로 정리해버린다”고 구체적으로 밝혔다.

“인물을 그려내는 과정에서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했다. 악인이라는 낙인이 찍힐 때 이야기는 단순해진다. 우리 작품은 소통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영화지만 영화보다 더 심한 현실로 시선을 돌리기 위한 메시지가 목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일상적인 소재로 다가야 했다.”
나를 찾아줘 유재명 / 사진=영화 나를 찾아줘 스틸컷

그런가 하면 이영애와 유재명의 격투 씬은 장르적 재미보다 더 큰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보는 이들을 압박한다. 특히 체격이나 조건 등을 떠나 인간 대 인간으로 싸우는 정연과 홍경장의 대립은 본능적이면서도 처절하게 느껴진다. 이에 유재명은 당시를 떠올리며 “육체적 힘듦은 당연히 크지만 그 메시지가 전달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굉장히 거친 연기들이 많았다. 이영애는 워낙 경험이 많은 선배다. 많은 안전장치 안에서 우리 만의 색깔을 만들고 싶었다. 멋진 액션이 아니라 처절한 싸움. 너무 멋진 경험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완성도에 놀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재명은 사실 몸과 에너지를 쓰는 연기가 더욱 편하게 느껴진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는 “힘을 쓰고 에너지를 쓰는 연기는 몇 가지의 분명한 코드를 두고 달려가면 된다. 하지만 섬세한 연기는 켜켜이 쌓여지는 작업이기 때문에 힘들었다. 오히려 내게 어려운 건 미묘한 감정 사이를 표현하는 것”이라면서 “서로 바라보는 짧은 단어들의 대사들, 드러내지 않으면서 객석에 전달돼야 하기 때문에 섬세한 작업이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디테일한 나만의 연기를 넣고 싶었다. 참 어려운 작업”이라며 배우로서의 투철한 가치관을 드러냈다.

연기적으로 독보적인 아우라를 과시하는 유재명에게도 결코 쉽지 않았던 작업. 투박하면서도 거친 연기 톤을 완성시키기 위해 유재명은 많은 고민과 갈등을 겪었다고. 특히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소재인 만큼 사명감과 책임의식 또한 필요했다. 이처럼 쉽지 않은 작업을 선택한 이유가 사뭇 궁금해졌다.

이에 유재명은 “먼저 작품의 강렬한 메시지가 와 닿았다. 이야기의 힘이 너무나 좋았다. 상징과 비유도 좋았고 엔딩에 다다를 때의 메시지가 분명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희망적인 메시지까지. 그런 만큼 영화적으로 완성도 역시 만족스러웠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보다 뉴스 보는 것이 더 힘들다. 배우의 작업은 허구다. 사명감으로 일하지만 현실은 허구가 결코 따라올 수 없는 아픔의 이야기가 많다. 그런 지점에서 ‘나를 찾아줘’는 우리 현실을 돌아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지나치게 묵직한 영화의 톤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고 부담스럽게 다가갈 수 있다. 아동학대를 비롯해 실종아동에 대한 무관심, 악의 없는 장난, 보호 받지 못하는 약자, 외부인을 배척하는 공동체 등 무거운 소재들이 각자 만의 담론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부 의견을 두고 유재명은 ‘나를 찾아줘’는 결코 무섭거나 영화적으로 센 영화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작품은 그저 아프고 처절한 영화라고. 영화에 따라오는 선입견을 우려하던 유재명은 조심스럽게 “영화적 질감으로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내려 했다. 폭력이 폭력을 낳고 오해가 오해를 낳는다. 작품은 너무나 현실적이기 때문에 아픈 것이다. 그래서 눈물이 나고 질끈 감아서 쳐다볼 수밖에 없는 이야기”라 전했다.

이처럼 숱한 고민 끝에 완성된 유재명만의 홍경장. 유재명은 그간 드라마 ‘비밀의 숲’ ‘자백’, 영화 ‘명당’과 ‘비스트’ 등 다작으로 많은 캐릭터들을 만나며 큰 사랑을 받았지만 이전들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특히 유재명은 특유의 서늘한 카리스마로 시선을 압도하며 이영애를 압박한다. 이에 장르를 넘나들며 묵직한 존재감을 선사할 수 있던 이유가 궁금해졌다. 유재명은 “사실 ‘윤희에게’의 아빠와 ‘응답하라1988’의 동룡이 아빠가 나와 비슷하다. 반면 ‘비밀의 숲’ 이창준은 없다”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 “작품을 많이 하긴 했다. 배우가 그 작품을 하고 나면 그 인물이 된 것 같다. 지금까지 내게 홍경장의 욕망이 남아있을 것 같다. 언젠간 좋은 질료로 남을 것이다. 눈물이 흐르면 그걸 기억하고 싶다. 배우의 숙명이다. 한 작품이 주는 질료를 다음에 더 재수 없는 악역이 온다면 홍경장이 레퍼런스가 되지 않겠냐”고 진지한 답변을 내놓았다.

쉼 없이 달려온 만큼 그에게도 쉼표는 필요했다. 이에 유재명은 “나 역시 슬럼프나 매너리즘을 느끼지만 그럴 때마다 일상에서 여유를 가지려 한다. 이른바 ‘나를 찾는다’. 유일하게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 딱 소주 한 병 있었으면 좋을 때. 잠시 멈춰서 멍하니 있을 때가 그 순간이다. 가끔 스스로가 낯설 때가 있다. 배우 유재명, 인간 유재명으로서든 바쁜 일상 속에 잠시 멈춤이 나를 돌아보게 하는 소소한 시간이다. 운 좋게 많은 작품을 만나면서 배우로든 개인으로든 부담감이 생긴 것은 사실이다. 그럴수록 꼬박 꼬박 스스로를 챙긴다”고 토로했다.

“많은 이들이 제가 바쁘다고 생각한다. 장르와 상관없이 유재명이라는 배우를 원한다면 어떤 작품이든 참여하는 것이 다작의 이유다. 사실 작품이 제게 와준 것이 감사하다. 앞으로도 딱 지금처럼 하고 싶다. 물리적 나이가 든 것은 사실이다. 다만 다작으로 인한 이미지 소비에 대한 걱정은 없다. 그런 것들을 겪었다면 경계시할 텐데 아직 잘 모르겠다. 이미지 소비가 되면 어떠냐. 그 역시 제 모습이다.”

[스포츠투데이 우다빈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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