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나라' 장혁, 새로운 이방원의 탄생 [인터뷰]

입력2019년 11월 29일(금) 22:45 최종수정2019년 11월 29일(금) 11:05
나의 나라 장혁 / 사진=싸이더스HQ 제공
[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올해 데뷔 23년 차인 장혁의 데이터베이스는 방대하다. 마치 서랍에서 물건을 꺼내듯 연기 톤과 액션을 자유자재로 사용한다. 그럼에도 더 많은 경험을 쌓아 연기 세계를 구축하고 싶다는 배우 장혁이다.

'나의 나라'는 고려 말 조선 초를 배경으로 각자의 신념이 말하는 나의 나라를 두고 서로에게 칼끝을 겨누며 권력과 수호에 관한 욕망을 그렸다. 장혁은 극 중 왕좌에 오르기 위해 왕자의 난을 벌이는 이방원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그간 이방원은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다뤄졌다. 이방원은 왕위에 오르기 위해 형제를 죽인 인물,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처가를 박살 내는 인물이다. '피의 군주'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이방원의 캐릭터는 확실하다. 장혁 역시 영화 '순수의 시대'에서 한차례 이방원 역을 맡은 바 있다. 이처럼 장혁과 이방원의 만남은 낯설지 않았다.

그러나 뚜껑을 연 장혁의 이방원은 달랐다. 우아하면서 날카로웠다. 심지어 감성적이기까지 했다. 새로운 이방원의 탄생이다. 이에 대해 장혁은 "'순수의 시대'에서 이방원을 연기한 적이 있다. 그때와는 조금 다르게 표현했다. 일단 상황이 달랐다. '순수의 시대'에서는 왕자의 난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러나 '나의 나라'는 사병과 함께 나라를 만들어 간다. 시작점 자체가 달랐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나의 나라'의 이방원은 야망과 야심으로 왕이 되고자 한 인물이 아니었다. 고려의 신하로서 개혁을 바랐고, 세력을 끌고 개혁을 하고자 한 인물이었다. 원래 개국을 바란 건 아니었다. 상황이 개국으로 흘러갔고, 개국을 해야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기에 이런 선택을 한 것"이라며 "여기에 아버지에 대한 감성적인 시작, 버려진 사람들이 더해져 조금 다른 이방원이 탄생한 게 아닐까 싶다"고 설명했다.

장혁이 그린 이방원은 우아했다. 그는 "우아하게 표현하기 위해 자세, 부채를 들었을 때의 각도, 시선을 세밀하게 그렸다. 이방원은 자신이 인정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시선도 주지 않는 사람이다. 항상 의심하고, 누군가와 접촉하면 줄 게 많은 사람이다. 그렇기에 나를 보여주기 전에 끊임없이 관찰한다. 이런 느낌이 우아하다면 우아하지 않을까. 시선, 말투, 거리 등을 다 계산했다"고 전했다.

특히 부채의 사용이 우아함을 더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부채는 계급의 상징이다. 민초들과 시각적으로 분류되지 않냐. 포인트를 주기 위한 설정이었다"며 "극 후반에는 부채에 그림을 넣어서 이방원의 마음을 대변하기도 했다. 대나무가 바람에 흔들리고, 달이 있는 것들은 외로움이었다. 이방원은 끝으로 갈수록 외로워진다"고 했다.
나의 나라 장혁 / 사진=싸이더스HQ 제공

또 장혁은 '조금 다른 이방원'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연기 서랍 속 톤과 액션을 각기 꺼내 조합했다. 그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지 않나. 이방원이 기록에서는 피를 많이 보는 사람이지만, 칼 든 사람의 애처로움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대사 톤은 드라마 '객주'의 톤을 가져왔다. 당시 연설을 하는 장면이 많았는데, 이걸 '나의 나라'에서 하면 괜찮겠다 싶었다. 비축된 걸 가져온 거다. 어떤 역할을 맡을 때 내가 가진 것에서 재편성하고 적재적소에 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액션 역시 그동안 정말 많이 했다. 그때의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솔직히 이번에는 액션을 하고 싶지 않았다. 왕을 한 번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액션이 꼭 필요하더라"고 덧붙였다.

장혁이 연기 서랍에서 꺼낸 건 톤과 액션만이 아니었다. 그는 배우 김영철과의 호흡도 지난 작품을 통해 배웠다. 그는 "김영철과 부자 사이로 만난 건 두 번째다. 드라마 '아이리스2'에서도 호흡을 맞춘 바 있다. 그때도 부자 사이였으며 대척된 관계였다.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라며 "이번엔 좀 더 밀도가 높았다. 거기에 애처로운 원망까지 더해졌다. 결이 조금 달랐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나이가 들면서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져서 였을까. 장혁은 자신 안에 있던 것들에 여러 가지를 더해 발전시키며 작품을 완성했다. 이에 대해 장혁은 "사실 삐딱한 구석이 있다. 연기할 때 작가의 표현을 틀어보고 싶더라. 약간 나만의 재미였다. 물론 장면이 가지고 있는 색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였다"며 "어떤 상황이 있으면 그 상황으로 가는 과정이 있지 않냐. 그런 걸 바꿔보고 싶었다. 예를 들어 방석을 싫어할 이유는 없었으나 세자가 됐으니 목적을 가지고 죽인 거다. 방석을 죽였을 때 이성적이었으나 감정적으로는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떨림을 표현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처럼 장혁은 매 장면을 허투루 생각하지 않는다. 깊은 고민에서 작은 떨림까지 표현하는 배우였다. 그는 "신인 때부터 그런 게 버릇이 됐다. 신인은 모르니까 준비할 수밖에 없지 않냐. 또 현장에서 배운 것도 많다. 선후배 배우들, 감독, 스태프, 심지어 분장팀에게서도 배운다. 각자 자신의 생각이 있으니까 그런 게 나에게 들어왔을 때 차곡차곡 쌓이더라"며 "나이가 들면서 부족하고, 더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걸 채우기 위해 여전히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장혁은 항상 고민하는 배우가 되길 바란다. 그는 "각 나이에 표현할 수 있는 게 정해져 있지 않냐. 정서도 주기적으로 바뀌는 만큼 지금 내 나이에 표현할 수 있는 건 지금뿐이다. 그렇기에 더 고민하고 싶다"며 "이성적인 계획과 판단은 이런데, 감성적으로는 마음에 드는 캐릭터를 하고 싶다. 그렇기 위해서는 작품이 끊임없이 들어와야 되지 않을까"라고 말하며 미소를 보였다.

이렇게 23년을 달려온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장혁은 "불러주는 게 좋았고, 치열하게 쌓았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신인 때 많이 공부한 이유도 치열했기 때문이다. 그 치열함은 지금도 있다. 현장에 갔을 때 딱 두 가지만 생각한다. 캐릭터 설득력과 내가 떠났을 때 다시 일하게 하는 마음을 갖게 만드는 것"이라며 "'보이스' 김홍선 감독의 '본대로 말하라'에 출연한 것처럼, '타짜' 강신효 감독의 '마이더스'에 출연한 것처럼 다시 찾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전했다.

이처럼 장혁은 연기 데이터 데이스에 이방원을 추가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데이터베이스는 더욱 방대해지기 마련이다. 이를 바탕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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