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재다능' 박희진, 장기전에 돌입하다 [인터뷰]

입력2019년 12월 12일(목) 10:10 최종수정2019년 12월 12일(목) 12:01
박희진 / 사진=티브이데일리
[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박희진은 꿈꾼다. 아주 먼 훗날에도 후배들과 현장에서 호흡을 맞추고 싶은 꿈이다. 이를 이루기 위해 그는 장기전에 돌입했다. 조금은 느린 호흡으로 꾸준하게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배우 박희진이다.

처음 박희진이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건 개그 무대에서다. 사실 박희진은 코미디와 다소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그는 계원예고를 졸업하고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던 평범한 음악인이었다. 그런 그가 연예계에 입문한 건 우연한 기회였다. 음대 재학 중 피아노 레슨을 위해 공고를 붙인 그는 우연치 않게 한 남성을 만나게 됐다. 알고 보니 초등학교 동창인이었다. 운명을 바꿀 우연이 시작된 순간이다.

박희진은 "지인이 마침 서울예술대학교 연극과에 다니고 있었다. 무대에 오르기 위해 악기 몇 개 다루고자 레슨을 구하던 중 나를 만나게 된 거다. 하루는 서울예대는 어떤 사람이 다니는지 궁금해 물은 적이 있다. 그가 곧바로 '너 같이 끼 많은 애가 다니는 게 서울예대'라고 하더라. 바로 원서를 냈다. 지인의 후배로는 들어가기 싫어서 영화과에 지원한 게 시작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운이 좋게 서울예대에 한 번에 붙었다. 영화과를 다니며 단편 영화에도 많이 출연했다. 원래 나는 배우가 되고 싶어서 방송 삼사 탤런트 공채 시험도 봤는데 다 떨어졌다. 그러던 중 MBC 공채 개그맨 시험을 봤다. 3050명 중에 5명을 뽑는 자리였는데 내가 뽑히더라. 그렇게 연예계에 데뷔했다. 나는 인복이 좋고, 운도 좋아서 그런지 도전하면 인생이 잘 풀리는 편이었다. 더 착하게 살고 더 좋은 사람으로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배우가 그렇다. 내가 아무리 준비돼 있어도 선택을 받아야 하는 직업이다. 그런데 나는 역할이 작던 크던 누군가 써주고, 아직까지 활동하는 게 감사하다"고 전했다.

개그 무대를 종횡무진하던 박희진을 연기자로 각인시킨 건 2005년 방송된 MBC 드라마 '안녕, 프란체스카'부터다. 그는 안성댁 캐릭터를 만나 수많은 유행어를 탄생시키며 배우로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박희진은 "원래 '안녕, 프란체스카'는 단발성 출연이었다. 그런데 현장에서 첫 대사를 뱉는 순간 뒤집어지더라. 이후 분량이 늘고, 고정이 돼 마지막까지 함께 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최근 종영한 tvN 주말드라마 '날 녹여주오'도 마찬가지였다. 박희진에게 주어진 건 인플루언서라는 캐릭터 직업뿐이었다. 그렇다고 인플루언서라는 직업이 도드라진 장면은 거의 없었다고 했다. 그러던 중 배우 임원희와 아이콘택트를 하는 장면이 있었다. 박희진이 또 자신의 진가를 발휘했다. 순간의 장면이 수많은 사람들을 각인시키며 임원희와의 러브라인까지 발전시킬 수 있었다.
박희진 / 사진=티브이데일리

이쯤 되니 박희진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운이 아니었다. 그는 늘 준비했고, 기회가 왔을 때 자신의 능력을 발휘했다. 박희진은 "단편영화 속 작은 역할부터 차근차근 준비했다. 현장에서는 자연스럽게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살짝 '밀당'을 하기도 한다. 내가 놀 수 있을 때는 확실히 놀고, 조금 더 정극인 분위기가 있을 때는 웃음기를 싹 뺀다. 강약 조절에 대한 노하우가 생긴 것 같다. 대처 능력과 순발력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감초 연기의 대명사로 떠오른 박희진은 정극에서도 강했다. 그는 영화 '가족계획'에서 묵직한 연기를 선보였다. 그는 "사실 정극에 도전할 기회가 그리 많은 건 아니었다. 그래도 단편 영화에서는 기회를 많이 줘서 연기를 꾸준히 할 수 있었다"며 "영화 '가족계획'에서는 남지현 엄마 역으로 나왔다. 시사회 때 무대인사를 하는데 내가 올라가는 객석이 웅성이더라. 다들 난 줄 몰랐던 거다. 아 성공했다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극이라고 해서 신파는 아니다. 배우라면 정극 안에서도 희극을 보여줄 수 있어야 되고, 희극에서는 진지한 면모를 보여줘야 한다. 그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배우로서 뚜렷한 소신이다. 희극인이라는 타이틀 뒤에 숨겨져 있는 박희진의 진심이다. 배우로 완전히 전향한 지 어느덧 10년. 아직도 사람들은 박희진을 두고 코미디언의 기억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이것도 과거의 그가 매력과 끼를 발산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박희진은 이제 온전한 배우로 기억되길 바란다. 그렇기에 그는 10년 계획을 세우고 장기전에 돌입했다.

박희진은 "1년 안에 무언가를 보여주겠다는 약속은 할 수 없다. 10년을 잡고 천천히 진국처럼 배우로서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김영옥 선생님과 두 번 정도 모녀로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 김영옥 선생님이 나를 지켜보더니 '너한테서 내 모습이 보인다. 너는 나이 먹어서 김영옥처럼 살 것 같다'고 하시더라. 그 말은 내가 나이가 들어도 젊은 배우들과 함께 현장에서 연기하는 모습이 보인다는 거였다. 다시 말해 평생 배우로 먹고 살 수 있다는 거였다. 그 말에 참 감동받았다. 천천히 준비해 김영옥 선생님과 같은, 나이 먹어서도 후배들과 함께 연기하는 박희진이 되고 싶다"고 희망했다.

이미 데뷔 25년 차인 박희진이 장기전을 생각한 건 쉬운 일이 아닐 테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의 칭찬을 원동력 삼아 앞으로 나가겠다는 포부다. 그는 "일 년에 한 번은 꼭 듣는 말이 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나에게 '참 재능도 많고 잘한다. 저평가된 배우 같다. 그러니 포기하지 마'라고 한다. 일 년에 한 번 같은 말을 듣는다는 게 신기하지 않냐"며 "내가 피아노를 전공했으니 피아노를 잘 치고, 요리도 잘하고, 노래도 잘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시는 부분이다. 이런 걸 알아줄 때 원동력이 된다"고 말했다.

다재다능한 박희진은 이제 자신의 재능과 매력을 대중에게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유튜브를 시작해볼까 고민하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용기를 가졌다. 박희진의 채널을 만들어 저평가된 부분에 대해 보여주고 싶다. 그렇기에 2020년은 스스로 도전하는 해가 되지 않을까"라고 했다.

이렇듯 박희진은 연기에 대한 진지한 마음으로 미래를 그렸다. 그의 바람대로 오랫동안 대중의 곁에서 희로애락을 전하는 배우가 될 모습이 기대된다.

[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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