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이병헌, 눈빛은 통한다 [인터뷰]

입력2019년 12월 23일(월) 09:50 최종수정2019년 12월 23일(월) 09:50
백두산 이병헌 / 사진=BH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연기 참 잘 하는 배우'에 항상 이름을 올리는 이가 있다. 대사, 감정, 액션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배우다. 무엇보다 그는 눈빛으로 내면을 전달한다. 이는 오락적 요소가 강한 상업 영화의 스크린을 뚫을 정도로 강력하다. 어느덧 데뷔 30년을 바라보는 이병헌이다.

이병헌의 필모그래피는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화려하다. 그는 1995년 영화 '누가 나를 미치게 하는가'로 데뷔해 '내 마음의 풍금' '공동경비구역 JSA' '번지 점프를 하다' '달콤한 인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악마를 보았다' '광해, 왕이 된 남자' '내부자들' '마스터' 등에 출연했다. 한국 영화의 발전 속 함께 호흡하며 성장한 것이다. 그 안에서 수많은 영화와 만나며 다양한 장르에 도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항상 자신의 내면을 작품 속 감정선에 따라 표현했다. 특히 대중에게 눈빛으로 연기하는 배우라는 인상을 심어주며 자신의 영역을 확장했다.

이런 이병헌이 데뷔 30년 만에 재난 영화에 도전했다. 영화 '백두산'(감독 이해준·제작 덱스터픽쳐스)이다. '백두산'은 대한민국 관측 역사상 최대 규모의 백두산 폭발이 발생하며 한반도가 아비규환에 빠진 상황 속 남과 북을 집어삼킬 추가 폭발이 예측되며 펼쳐지는 이야기다. 이병헌은 극 중 작전의 키를 쥔 북한 무력부 소속 일급 자원 리준평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이병헌은 "작품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재미다. 나도 영화가 재밌어야 본다. 재미라는 건 여러 형태로 다가올 수 있다. 단순히 유머일 수 있고, 실제 인물이 주는 감동이나 슬픔일 수 있다. 내가 재밌어하는 걸 관객들도 재밌어하면 좋겠다는 바람 하나로 선택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이번 영화 역시 재미가 있어서 선택했다. 비주얼적인 부분이 특히 재밌지 않냐. 우리가 늘 있는 공간인 강남역이 무너진다는 상상과 웬만한 사람이라면 한 번도 보지 못하는 백두산 천지에서 용암이 뿜어져 나온다. 이런 비주얼적 요소에 버디 무비의 재미가 가미됐다. 버디 무비와 재난 영화가 합쳐지는 건 흔치 않다. 이러한 차별점 때문에 선택했다"고 말했다.

'백두산'에는 북한과 남한을 비롯해 핵, 미군, 중국의 요원 등 세계정세도 담겼다. 자칫 정치적인 성향이 표출될 수 있음에도 이병헌은 오락적인 요소로 선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극 후반 리준평, 조인창(하정우), 미군, 중국의 요원이 맞닥뜨리는 장면이 있다. 자칫 유치해줄 수 있는 그림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 감독과 대화를 나누고 정리도 많이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정치적인 요소를 피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락 영화에서 정치적 요소가 너무 들어가면 자칫 작위적으로 보일 수 있다. 뭔가 메시지를 주려는 장치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그냥 뉘앙스만 풍기면 되지 않을까"라고 전했다.

이병헌은 '백두산'을 두고 재미를 강조했다. 그러나 재미만을 추구하면 전형적인 스토리라인을 따라갈 수 있을 터. 이병헌은 이런 것을 감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상업적인 느낌이 강한 영화는 클리셰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이것은 감수해야 되는 부분이다. 예측이 될 수 있는 상황이더라도 비주얼로 승부를 보면 된다"고 했다.

비주얼적인 부분이 선택의 기준이었으나 후반 CG 작업으로 이병헌 역시 개봉 전까지 완성물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는 "CG에 따라 재미가 많이 좌지우지된다고 생각했다. 나도 궁금한 상태에서 시사회를 했다. 그래서 기분이 남다르다. 다른 영화의 경우 드라마가 위주로 내가 연기한 걸 보기 때문에 객관성을 잃은 상태에서 본다"며 "눈앞에서 새로운 게 펼쳐지니까 관객의 마음으로 볼 수 있었다. CG 작업은 촬영 끝나고 몇 개월에 걸쳐 이뤄졌다고 들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후반 작업에 매달려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결과물을 보기 전 블루 스크린 앞에서 이병헌의 노력도 있었다. 그는 "그간 수많은 영화를 촬영하며 블루 스크린 앞에서 여러 가지 상황을 상상하며 연기했다. 기본적으로 CG가 입혀질 걸 상상하면서 한다. 이번 영화는 좀 특이한 경우였다. 지진은 땅의 움직임이다. 내가 내 몸을 얼마나 움직여야 되는지 계산을 많이 했다. 버스가 휘청이는 장면에서는 내가 얼마나 강도를 세게 줘야 생생하게 보일까 생각을 많이 한 것 같다. 또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같은 타이밍에 움직여야 돼 맞추는 것도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제로 화면에서 구현된 걸 보니 몸의 움직임이 기가 막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후반 작업에서 타이밍을 맞춰서 그런 것도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백두산 이병헌 / 사진=BH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렇듯 '백두산'은 오락적 요소로 뭉쳐 관객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만들 영화다. 이 안에서 감정선을 보여주는 인물은 아이러니하게도 '재미'를 강조한 이병헌이었다. 이에 대해 이병헌은 "리준평은 사실 자신을 많이 숨기는 인물이다. 한마디로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첫 등장은 임팩트 있게 나와서 아주 날카로운 사람인가 싶다가도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다가 순간 돌변해 위협이 되기도 한다"며 "그런 그가 자신을 보여주는 순간, 관객들은 리준평의 감정에 집중한다. 잠깐씩 나오는 정서에 공감하는 거다. 오히려 자기를 감추니 관객들이 궁금해하며 빠지다가 순간 마음을 열 때 훅 들어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종잡을 수 없는 리준평 캐릭터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이병헌의 숨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는 "평소 시간을 많이 투자해 집에서 연구하거나 공부하지는 않는다. 대신 처음 시나리오를 읽을 때 전체적인 이야기와 감독이 전하려는 메시지가 뭔지, 이 캐릭터가 영화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주관적 해석은 그다음이다. 인물을 보며 감정선을 느낀다"며 "그렇기에 특별히 공을 들여서 대본을 공부하지 않는다. 세 번까지 시나리오를 읽고 머릿속으로 생각을 하는 게 나한테는 중요한 시간"이라고 했다.

시나리오를 여러 번 읽으며 초반 캐릭터 파악에 집중했다면, 카메라 앞에서는 특유의 눈빛으로 승부를 보는 이병헌이다. 그는 눈빛 연기를 두고 "안약을 좋은 걸 쓴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눈빛과 표정으로 연기하는 건 기본적인 얘기일 수 있지만, 내면의 상태를 그런 감정으로 만들어 놓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감정 상태에 백퍼센트까지는 아니더라도 최대한 가깝게 맞추고 촬영에 들어간다. 그렇게 내면을 가지고 있으면 눈빛, 표정이 자연스럽게 딸려 나온다. 내면 없이 연기하는 건 껍데기와 같다. 사진 찍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영상 안에서 움직이는 건 껍데기로만 할 수 없지 않냐"고 전했다.

항상 내면의 감정을 유지하는 건 어려운 일일 터. 그는 "물론 어렵다. 나도 사람인지라 촬영장에서 밝게 있다가 카메라가 돌면 확 변하는 건 어렵다. 물론 그런 척은 할 수 있다"며 "항상 어느 정도 감정의 레벨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촬영장에서도 시간을 갖던가 너무 유쾌한 건 피하려고 하기도 한다. 겉으로 보여주지는 않지만 끝까지 발버둥 치고 있는 거다. 내 감정을 어떻게 일정 레벨에 올리냐는 배우들이 갖는 어려움이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끝으로 이병헌은 미래를 꿈꿨다. 그는 "여전히 보고 싶은 배우로 오래갔으면 좋겠다. 연예인은 각자의 곡선이 있다. 그 곡선이 얼마나 길게 늘어지느냐가 관건인 거다. 그렇게 긴 곡선을 유지해 계속 작품을 찍고 싶다. 또 그 작품이 기다려진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이처럼 이병헌은 데뷔 30년의 관록으로 내면 연기를 통해 눈빛과 표정까지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배우가 됐다. 눈빛은 내면의 창이라고 했던가. 단단한 내면을 차곡차곡 쌓아 눈빛만으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른 이병헌이다. 그럼에도 앞으로의 바람은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배우"가 되는 것이라는 겸손한 그였다.

[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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