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식, 대한민국이 사랑하는 배우 [인터뷰]

입력2019년 12월 23일(월) 09:35 최종수정2019년 12월 23일(월) 09:35
최민식 천문 하늘에 묻는다 /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스포츠투데이 우다빈 기자] 배우 최민식에게는 많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그러나 섣부르게 호칭을 붙이긴 어렵다. 스스로 만든 길로 뚜벅 뚜벅 걸어간 만큼 독보적인 위치에 올랐고 국내에서는 그를 대체할 자가 없는 까닭이다.

데뷔 후 다양한 작품활동을 통해 독보적 존재감을 입증한 최민식. 긴 시간 동안 갈고 닦은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청룡영화제, 대종상영화제, 백상예술대상 등 국내 다수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 수상은 물론,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도 수상을 하며 명실상부 최고의 배우임을 입증했다. 특히 '파이란'의 3류 양아치부터 '올드보이'의 15년 간 갇힌 남자, '악마를 보았다'의 연쇄살인마, '명량'의 이순신 장군까지 작품마다 다채로운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극찬을 받았다. 이러한 그가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감독 허진호·제작 하이브미디어코프)로 돌아왔다.

'천문: 하늘에 묻는다'는 조선의 하늘과 시간을 만들고자 했던 세종(한석규)과 장영실(최민식)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최민식은 극 중 역사적 인물 장영실을 맡아 조선 최고의 천재 과학자의 모습을 선보인다. 장영실은 극 중 세종 24년 안여 사건(임금이 타는 가마 안여(安與)가 부서지는 사건)으로 인해 곤장형을 받고 그 이후 어떤 역사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되는 인물.

먼저 개봉을 앞둔 소감으로 최민식은 만족감보다는 아쉬움을 먼저 꼽았다. 그에게는 항상 작품 속 아쉬움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고. 최민식은 "항상 결과물이 아쉽다. 오롯이 나의 생각이 100% 담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함들지만 그런 매력이 있는 직업이다. 서로 소통하고 타협한다. 그럴 때 각자의 영화를 그리는 순간이 재밌다.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하고 현장으로 가면 일사천리다. 모여서 쿵짝쿵짝"이라 밝혔다.

이어 "사과는 많고 바구니는 작다. 시공간적 제약이 있기 때문에 오롯이 드라마에 집중하려 했다. 두 사람의 인간 관계, 업적, 정치적은 다 아는 이야기지 않냐. 다큐가 아닌 영화기 때문에 하나의 재료가 아닌 주제가 중요했다. 두 관계에 대한 궁금증이 작품에 대한 동기"라고 설명했다.

장영실은 대중에게 익숙한 역사적 인물인 만큼 새로운 캐릭터를 완성하기 위해서 많은 상상력이 필요했을 터. 최민식은 자신이 맡은 장영실 캐릭터를 구상하기 위해 낭만과 상상력을 한껏 발휘했다.

이를 두고 최민식은 "실제로 장영실이 세종보다 7살 더 많았다고 했다. 그 계급 사회에서 왕과 천민이 의기투합했다. 천문의기를 만들 때 과연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갔을까 궁금했다. 둘만 있을 때 어땠을까. 우리의 상상력으로 많이 표현되길 바랐다"고 연기적으로 집중했던 지점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장영실에 대한 자료가 많이 없더라. 어디서 어떻게 사망했는지 기록조차 없다. 막연했다. 조선왕조실록 속 '세종이 처소에서 장영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는 대목이 힌트가 됐다. 열려 있는 군주를 만나 장영실의 궁 후원을 버선발로 뛰어다니는 그림이 상상됐다. 임금과 신하의 형식적인 관계가 아녔다. 아주 비정치적이고 순수한 인물이 만들어졌다"고 전했다.
천문 하늘에 묻는다 최민식 / 사진=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공식 스틸컷

대한민국 모두가 아는 천재 과학자 장영실이 아닌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 찬 예술가 영실. 이런 인물의 구현은 최민식의 사소한 상상력에서 시작됐다. 그는 "예술을 하는 사람과 과학자 간에는 뭔가를 창조하는 공통분모가 느껴졌다. 내가 해석하는 장영실은 독창적인 자부심도 있었을 것이다. 그저 세종 곁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인물이다. 얼마나 행복했겠냐"며 직접 만든 영실의 서사를 설명했다.

이처럼 최민식은 주어진 환경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한석규의 존재는 든든한 서포터이자 함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파트너였다. 21, 20살 때 만난 두 사람은 길고 긴 세월을 함께 지내며 서로에게 손과 발이 돼 주었다.

"내가 대학교 2학년 때 한석규가 갓 입학했다. 서로의 20살을 기억한다. 이제 우리는 50대 후반 늙은이가 됐다. 그 세월이 도움이 많이 됐다. 다 커서 사회에서 만난 동료 배우와 다르다. 열악하던 상황에서 연기를 배웠다. 20년 만에 작품을 다시 하게 됐지만 엊그제 만나서 이야기한 것 같다. 바로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

허진호 감독은 두 사람 만의 역사에 있기에 관계의 무늬를 새겨넣을 줄 아는 감독이었다. 최민식의 말을 빌리자면 허진호 감독은 최민식과 한석규의 우정을 소재로 설계도를 그렸다. 작품 출연 제의를 두고 허진호 감독은 제법 대담한 태도를 취했다. 대본을 최민식과 한석규에게 나눠준 후 두 사람에게 캐릭터를 고르라고 지시했다고. 이는 두 주연이 최민식과 한석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최민식은 당시를 떠올리며 "대본을 받고 나서 한석규에게 3일 후에 만나서 결정하자 했다. 나는 세종도, 장영실도 상관없었다. 그저 한석규와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허진호 감독은 어색한 배우들이 친해지는 것보다 우리의 친밀함을 이용하려 하지 않았을까. 한석규가 세종을 먼저 선택했다. 다른 걸 보여주고 싶었다. 두 캐릭터 다 욕심이 있다. 왕은 다음에 시켜주면 하면 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충무로의 기둥이자 몽상가들의 재회는 이처럼 시작부터 꽤 파격적이었고 과정 역시 남달랐다. 최민식은 현장 분위기에 대해 "우리는 싸울 일도 없었다. 아무리 선후배 지간이어도 싸운다. 하지만 우리는 그저 자연스러운 사이"라면서 "서로 강요하는 사이가 아니다. 그래서 오래 간다. 우리의 추억 속에는 정말 열심히 했던 모습이 있다. 대학 생활 때는 미팅 한 번을 못해봤다. 우리는 매일 늘상 추리닝과 목장갑이었다. 돌이켜봐도 정말 열심히 했다. 그 추억들이 지금도 그 때 잘 배운 것 같다. 버릇을 잘 들였다. 그때 그 선후배들, 동기들과 작업했던 게 지금까지도 밑천이 된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그립다"고 뭉클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1982년도 극단활동으로 배우 생활을 시작한 이후 어느덧 데뷔 58주년을 맞이한 최민식은 대한민국 영화계의 살아 있는 역사가 됐다. 그러나 누구보다 화려한 이력을 가졌음에도 스스로의 필모그라피는 잘 돌아보지 않는다는 의외의 답변이 이어졌다.

최민식은 "지나간 것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세 작품을 연달아 왜 말아먹었는지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사실 흥행해서 안 좋은 배우가 어딨냐. 결과에 대해 복기는 할 지 언정 빨리 잊으려 한다. 다만 어떤 부분이 소통이 안 됐는지, 관객들을 불편하게 하는지 인식이 필요하다. 대중들의 트렌드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로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라 소신을 드러냈다.

"나는 굉장히 이기적인 사람이다. 연극의 3대요소 중 관객이 있다지만 나는 관객이 아닌 스스로를 위해 일한다. 오로지 연기로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지 보는 이들에게 잘 보이고 싶지 않다. 다른 배우들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이는 내 인생을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공부하고 연기한다."

이처럼 최민식이라는 배우 속 안에는 단단한 가치관이 기저에 깔려있다. 최민식은 대중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은 일체 없노라고 털어놓았다. 짧고 굵은 이 한 마디는 수정처럼 단단하게 맺힌 그의 결심이자 각오였다. 최민식이라는 대배우가 완성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이는 곧 역사이자 한국 영화계의 계절로 남았다.

[스포츠투데이 우다빈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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