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경원 "사표 던지고 선택한 연기, 운명이죠" [인터뷰]

입력2020년 02월 25일(화) 09:00 최종수정2020년 02월 25일(화) 10:51
양경원 / 사진=팽현준 기자
[스포츠투데이 김나연 기자] 누구나 한 번은 인생의 변환점과 직면하게 된다. 일찍이 자신이 걸어갈 하나의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뒤늦게 자신의 길을 운명처럼 발견하는 사람들도 있다. '반짝'이 아닌 '롱런'. 배우 양경원의 꿈은 이제 시작이다.

2008년 연말, 양경원의 인생에는 변곡점이 찾아왔다. 건축학을 전공했던 양경원은 그 누구나 그렇듯 전공을 살려 건축 회사에 취직했다. 힘이 들거나, 일이 자신과 맞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이 일을 하면서 평생 재밌게 살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 것이 시작이었다.

양경원은 "대학생 때 우연히 접한 탭댄스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마냥 궁금해서 무료 강좌가 있는 것을 보고 회사 다니면서 퇴근하고, 그리고 주말에 트레이닝을 받으러 다니다가 '이도 저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양경원은 다니던 건축 회사에 사직서를 던졌고, 춤과 노래에 올인하게 됐다.

불안정한 삶을 걱정하기에는 그는 아직 젊었다. 양경원은 "그렇게 시작해서 지금까지 오게 됐다. 대학로를 가고 싶었고, 오디션을 봐서 지금 극단에 속하게 됐다"고 밝혔다. 2010년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로 데뷔한 양경원은 2012년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에 입단했다.

단지 춤과 노래가 좋아 모든 걸 포기하고 대학로에 선 양경원은 혹독한 성장통을 겪었다. 그는 "연극 '나의 할아버지'를 하면서 큰 시련이 닥쳤다. 정말 먼지가 돼서 사라질 것 같은 상태였다. 리허설하면서 제가 대사만 하면 연습이 중단됐다. 정말 연기를 못 했던 거다. 근데 극단 연출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그저 묵묵히 저를 기다려줬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양경원 / 사진=팽현준 기자

극단 사람들의 도움과 연기를 향한 열정을 불태우던 양경원은 브라운관까지 진출, 2019년 운명의 작품을 만났다. 극단에서 연기하는 양경원을 눈여겨보던 캐스팅 디렉터가 '사랑의 불시착'의 오디션을 제안한 것. 양경원은 그렇게 이정효 감독과 마주하게 됐다.

양경원은 "1차, 2차, 3차 오디션까지 거쳐서 표치수로 발탁됐다. 박수찬(임철수)역, 홍창식(고규필)역, 표치수까지 많은 역할의 대본 리딩을 했었는데 그때 저는 사실 표치수가 멋있는 역할인 줄 알고 하고 싶었다"며 "감독님이 2차 때 표치수 인물 설명을 주셨는데, 멋있는 역할은 아니더라. 근데 오히려 더 매력 있는 역할이었다"고 웃었다.

양경원은 극중 북한 민경대대 5중대 특무상사 표치수 역을 맡았다. 표치수는 거친 인상과 성격을 가졌지만 속정이 있는 인물. 표치수를 연기한 양경원은 첫 방송부터 시청자들의 뇌리에 정확히 박혔다. 실제 북한 군인 같은 외모, 완벽한 북한 사투리, 능청스러운 표정 연기까지 주인공인 현빈, 손예진 못지않은 존재감을 드러냈다.

양경원은 "제가 웃긴 사람은 아니다. 이정효 감독님이 '웃긴 연기 잘하냐'고 물었을 때도 못 한다고 대답했다. 제가 개그감이나 예능감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며 "근데 제가 굳이 웃기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제3자가 보기에 웃긴 캐릭터였다. 상황적으로 표치수는 진지하고 절박한데, 보는 사람은 그게 웃긴 거다. 대본 리딩하고 나서도 감독님이 '절대 웃기려고 하지 말아라. 그냥 표치수로 열심히 하면 된다. 대본 믿고 가라'고 주문하셨다. 그만큼 박지은 작가님의 대본이 이미 완성돼 있었다"고 말했다.
양경원 / 사진=팽현준 기자

양경원이 공을 돌린 사람은 또 있었다. 바로 배우 손예진이다. 극 초반 양경원은 손예진과의 '앙숙 호흡'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양경원은 "손예진 씨가 연기한 세리가 아니었다면 표치수는 이만큼까지 관심과 사랑을 못 받았을 거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손예진 씨가 너무나 세리답게 연기했고, 또 저를 온전히 표치수로 봐줬기 때문에 호흡이 잘 맞았고 또 그게 화제가 됐던 것"이라며 "제가 아무리 열심히 하고 잘했다 하더라도 손예진 씨가 아니었다면 이 인기가 불가능했을 거다"라고 말했다. 손예진과의 영상이 유튜브에서 500만 뷰가 넘어간 것에 대해서는 "저 같은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가 혼자만 나왔으면 그 조회수가 나올 리가 있겠냐(웃음). 손예진 씨와 함께하는 영상이었기 때문에 그 정도의 관심을 받은 것"이라고 강조하며 웃었다.

이처럼 양경원은 인터뷰 내내 '사랑의 불시착' 주연 배우 손예진, 현빈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양경원은 "그 두 배우를 보고 '스타는 괜히 스타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며 " 내가 만약 두 배우의 분량, 스케줄이었다면 체력 저하가 극심해 못 견뎠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두 배우 모두 빡빡한 스케줄에도 항상 철저하게 준비해오고, 완벽한 연기력을 보여줬다"라며 "함께 호흡하는 상대 배우에게 참 잘 던져주고, 잘 받는다. 매 촬영 때마다 감탄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또 같이 하고 싶다"고 밝혔다.
양경원 / 사진=팽현준 기자

이렇듯 작가의 대본, 상대 배우의 연기에 공을 돌린 양경원은 표치수의 '완벽한 북한말'도 북한말 선생님에게 그 공을 돌리는 겸손함을 보였다. 그는 '실제 북한 사람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을 만큼 완벽한 함경도 사투리를 구사했다.

양경원은 "북한말 선생님이 계신데, 정말 대단하시다. 북한군 역할의 배우들이 모두 다른 사투리를 구사한다. 우리나라도 경상도 사투리가 있고, 전라도, 강원도 사투리가 있듯이 말이다. 이렇게 다 다른 지역인데 선생님이 대본이 나오면 캐릭터 별로 다 녹음해서 보내주신다. 그 뼈대에 색깔을 입히는 건 각자의 몫이지만"이라며 "현장에서 상주하시면서 계속 대사할 때마다 모니터를 하고, 코멘트를 많이 해주신다"고 설명했다.

이어 "선생님과 통화를 자주 하고 자주 얘기를 나눴는데, 선생님이 표치수의 화법으로 얘기를 해주신다. 이렇게 각자의 캐릭터에 맞춰서 일대일 교육을 시켜주셨다"며 "언어뿐 아니라 북한 군인의 색깔, 생활 등도 도움을 많이 받았다. 대본에도 북한말이 잘 쓰여있고, 지문도 잘 설명돼있다. 여기에 저는 숟가락만 얹은 것"이라고 겸손함을 보였다.
양경원 / 사진=팽현준 기자

양경원은 자신의 연기에 대한 찬사가 들리는 것이 아직 마냥 쑥스럽다. 그러나 그 누구의 역할이 컸든 표치수는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 또 기억 속에 깊이 남을 캐릭터가 됐다. 아직은 그의 얼굴을 보고 표치수라고 부르는 이들이 더 많지만, 양경원은 오히려 행복하다.

그는 "저는 아직 제 이름 석 자보다 표치수라고 불리는 게 더 좋다. 배역의 이름이 각인된다는 것은 제가 배우로서 목표하는 지점에 도달하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이 있다"며 "그렇게 배역의 이름을 알리다 보면 양경원이라는 이름 석 자는 자연스럽게 알려질 거라고 생각한다. 우선 다양한 색깔의 제2, 제3의 표치수를 만들어서 배우로서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자신만의 캐릭터를 쌓고 또 쌓아 '반짝'보다 '롱런'하고 싶다는 양경원은 여전히 나아가고 발전하고 싶다. 그는 "고여있지 않은, 유연한 배우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극단 사람들과 지금까지 해온 훈련과 고민들을 계속 이어가야 할 것 같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발전시켜서 진화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사표를 내던지고 선택한 연기. 그것은 양경원에게 곧 운명이자 삶의 전부가 됐다. 단 한 번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 적이 없다는 그는 연기를 하는 것이 마냥 행복하다. 연기의 즐거움을 아는 배우 양경원이 만들어갈 또 다른 '표치수'가 궁금할 따름이다.


[스포츠투데이 김나연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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