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대작 혐의' 조영남, 예술과 사기의 경계선 [ST이슈]

입력2020년 05월 28일(목) 17:24 최종수정2020년 05월 28일(목) 17:42
조영남 / 사진=DB
[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대작 그림을 구매자에게 알리지 않은 채 판매해 사기 혐의를 받고 있는 가수 조영남(75)이 공개 변론에서 무고를 호소했다. 조영남은 자신 고유의 사상과 참신함이 담긴 작품이었다는 입장이다. 미술계의 관행이라고 여겨지는 대작은 예술이 될 수 있을까.

28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는 그림 대작 의혹 관련 사기 혐의로 기소된 조영남의 공개 변론이 진행됐다. 자리에는 미술 작품 창작 과정, 거래 관행과 관련해 예술 분야 전문가들도 참고인으로 참석했다.

앞서 조영남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화가 송모 씨 등에게 그림을 그리게 한 뒤 약간의 덧칠 작업만 거쳐 자신의 서명을 넣은 뒤 총 17명에게 그림 21점을 팔아 1억5350여만 원을 가로챈 혐의로 2015년 6월 불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조영남은 선고에 불복, 항소장을 제출했고 2심에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사건은 검찰의 상고로 대법원으로 넘겨졌다.

이날 검찰은 "조영남은 인터뷰를 통해 직접 그림을 그린다고 밝히고 나는 조수가 1명도 없으며 짬을 내서 그림을 그린다',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고 밤을 새워서 그림을 그린다'고 말했다"며 "조영남은 세부적으로 그림을 그리라고 직접 지시, 감독하지 않았고 대작 화가가 독자적인 판단하에 독립적인 그림을 그렸을 뿐이다. 조영남은 완성품의 일부분만 덧칠 등으로 수정하고 지시 역시 문자메시지 등으로 했다"고 상고 이유를 밝혔다.

이어 "피고인 조 씨는 거래 당시 중요 사항을 알려주지 않은 상태에서 금전을 교부받아 사기죄가 성립됐다"며 "또 그는 수많은 방송, 인터뷰에서 직접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강조했다. 하지만 내용과 달리 추상적 아이디어만 제공하고 화가 송모 씨 등에게 그림을 임의로 그리게 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조영남이 조수를 차용한 것이 아닌 대작을 시켰고, 그 사실을 알리지 않고 그림을 판매했다. 일부 피해자가 조영남이 직접 그림을 그리지 않은 사실을 몰랐다는 것을 설명하며 사기죄가 성립된다"고 주장했다.
조영남 / 사진=DB

조영남 측 변호인은 "저작물의 기여 행위에 창작자가 없으면 저작자가 될 수 없다는 판례가 있다. 이에 조영남은 단독 저작자에 해당된다. 화가 송모 씨 등 조수 화가들은 조영남의 지시를 구체적으로 받아 그림을 그린 것이다. 여기에 조수 자신의 창작성은 개입하지 않았다. 또 조영남 역시 자신의 사상을 직접 송 씨에게 밝혔고 이를 통해 수정 작업도 거쳤기 때문에 직접 그린 것"이라고 했다.

조영남은 "지난 5년간 소란을 일으킨 것 죄송하다. 저는 평생 가수 생활을 해왔지만 50년 넘게 현대 미술을 독학으로 연구한 끝에 화투를 그리는 화가로 알려지게 됐다"며 "화투 그림을 그리며 조수와 함께하는 모습을 틈틈이 보여줬다. 누구랑 작업하는지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였다"고 진술했다.

끝으로 조영남은 내 그림은 어떤 방식으로 그렸냐보다 제목에 주목을 해주실 필요가 있다. 저의 미술은 개념 미술에 가깝다. 그림을 잘 그리느냐, 못 그리느냐 논란을 벌이는 건 옛날 미술 개념으로 느껴질 뿐"이라며 "남은 인생을 갈고닦아 사회에 보탬이 되는 참된 예술가가 될 수 있도록 살펴주시길 우러러 청한다. 부디 제 결백을 가려 주시길 바란다"고 울먹였다.

미술계에 종사하는 참고인들의 의견도 엇갈렸다. 신제남 한국전업미술가협회 자문위원장은 "남에게 아이디어를 줘서 그리게 하는 경우는 없다. 예술가는 모든 작업을 혼자 그린다. 작품은 처음부터 완성까지 혼자 하는 게 원칙이다. 조수를 쓸 수는 있지만 기여하는 바가 매우 적다. 조수가 대작처럼 8-90% 완성을 시킨다면 예술의 존재가 인정될 수 없다"며 "작가적 양심이 결여된 수치스러운 사기 행각이다. 아마추어가 프로의 작품에 덧댄다면 오히려 작품성의 질이 떨어지는 것이다. 남의 그림에 자기 그림을 그렸다고 쇼를 하는 것일 뿐"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표미선 화랑협회 회장은 "미술작가들이 조수의 도움을 받는 관행이 있고 조수를 쓰는 방식은 작가마다 다르다. 일반적으로 관행이라기 보다 필요에 의해 조수를 쓰고 회화 작품 역시 조수로 하여금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경우가 있다"며 "조영남은 자신의 철학대로 그림을 그렸고 작업량이 많다면 조수를 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본인의 생각이 들어갔기 때문에 본인의 작품"이라고 했다.

이렇듯 미술계에서도 조영남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르다. 작가의 사유가 들어갔으므로 작가의 창작물이라고 볼 수 있을지, 직접 작업한 게 적다는 점에서 사기가 될지 예상하기 어렵다. 선고 기일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대법원이 조영남에게 어떤 판결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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