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주세요" 조지 플로이드의 절규, 한 달간 스포츠계에 분 바람[ST스페셜]

입력2020년 06월 25일(목) 07:00 최종수정2020년 06월 24일(수) 20:16
사진=Gettyimages
[스포츠투데이 노진주 기자] 어제도 걷고, 오늘도 가고, 내일도 갈 길이지만 항상 새롭고 낯선 길이 있다고 했던가. '유색인종 평등' 외침은 수백 년 전에도, 반백 년 전에도, 어제도, 오늘도 끊인 적 없었지만 돌아오는 건 겨울철 볼을 따갑게 때리는 칼바람과도 같은 차가운 반응이었다.

한 달 전에도 외침은 여전히 존재했다. 이번엔 그 메아리가 세계 각계각층으로 울려 퍼져 인종차별에 항의하고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세상을 뒤덮었다. 스포츠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온몸'으로 표현했고, 긍정적인 변화까지 꾀했다.

"저를 죽이지 마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지난 5월25일 미국 미네소타주의 한 길바닥에서 백인 경찰의 무릎에 짓눌린 채 코피를 흘리고 있던 미국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어렵사리 외친 말이다. 마치 심한 목감기에 걸려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를 최대한 긁어모아 말하는 사람처럼 플로이드의 외침에는 '허한' 힘만이 들어가 있었다. 목에 피가 통하지 않을 지경에 이를 때쯤엔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온몸으로 '제발'을 외쳤지만, 돌아오는 건 더욱 강한 힘이 실린 경찰의 무릎이었다. 결국 플로이드는 번지수를 잘못 찾은 무릎보다 못한 취급을 받은 채 질식사로 세상을 떠났다.

이 사건은 편의점에서 위조된 20달러 지폐가 사용됐다는 신고에서 시작됐지만, 비무장 상태의 흑인 남성을 상대로 한 백인 경찰관의 '과잉진압' 문제로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여기에 미국 전역에 뻗어 있는 소수인종에 대한 그간의 사법적 차별이 이번 사건으로 여실히 드러났다는 지적까지 더해졌다.
사진=Gettyimages

후폭풍은 세계를 불구덩이에 빠트리고 있는 코로나19를 단숨에 집어삼킬 만큼 거셌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조지 플로이드에게 정의를(Justice for George Floyd)' 등의 연대 메시지를 내건 인종차별 규탄 시위가 들불처럼 번졌다.

'인종차별 규탄 물결'은 스포츠계에도 일었다. 잔잔했던 파도가 다시 세차게 일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과거 스포츠 대회에서 '인종 차별'에 대한 항의 메시지를 전한 사례는 여러 차례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남자 육상 200m에서 각각 금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했던 토미 스미스와 존 칼로스가 시상대 위에서 검은 장갑을 끼고 하늘 높이 주먹을 들어올린 사건이 있다. 지긋지긋한 인종차별에 항의하기 위함이었다. 결과는 처참했다. 두 선수는 올림픽 선수촌에서 쫓겨나고 선수자격을 영구 박탈당했다.

반백 년여 전, 모난 돌이 정 맞는 시대적 분위기는 지금보다 강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움을 호소하던 흑인들의 부르짖음이 묵살당하는 것이 만연했던, 꿈속에서도 마주하기 싫은 부끄러운 시대였다.
사진=르브론 제임스 SNS 캡처

52년이 흐른 지금, 총대를 같이 메길 자처하는 선수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선봉장에 선 선수는 미국프로농구(NBA) 스타 르브론 제임스(LA 레이커스)였다. "이제 이해하겠느냐? 아니면 아직도 모르겠느냐?"라는 글과 함께 지난 2016년 미국프로풋볼 경기 전 콜린 캐퍼닉이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의미로 무릎을 꿇고 있는 사진을 게재했다.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흑인 인권이 보호받지 못하는 개탄스러운 상황을 짤막한 글과 사진 한 장으로 표현한 것이다.

지난달 말 재개된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에서도 선수들이 경기 전 10초간 무릎을 꿇으며 푸르른 잔디를 숙연함으로 물들였다. K리그1 전북현대의 베테랑 공격수 이동국과 '손세이셔널' 손흥민(토트넘)도 무릎 꿇기 퍼포먼스에 동참하며 함께 목소리를 냈다. 해외 축구선수 제이든 산초(도르트문트)는 이달 초 열린 리그 경기에서 골을 터트린 후 언더셔츠에 적힌 '조지 플로이드에게 정의를(Justice for George Floyd)' 문구를 공개하기도 했다.

경기장 내 정치적 메시지 표출은 징계 사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선수들이 모를 리 없다. 그러나 사태가 사태인 만큼 선수들도 더는 '징계' 칼날에 위협당해 축구공처럼 둥글게만 넘어가지 않았다.

선수들의 용기 있는 움직임은 변화의 바람을 가져왔다. 분데스리가를 관장하는 독일축구협회는 성명을 통해 "어떠한 형태의 인종차별, 폭력을 강하게 반대한다"면서 "관용, 개방성, 다양성을 지지하기에 선수들이 보여준 이번 행동을 존경하고 이해한다"며 감싸안았다. 그동안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던 축구협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국제축구협회(FIFA) 잔니 인판티노 회장도 선수들의 행동에 대해 "처벌이 아니라 박수를 보내야 한다"며 이번 만큼은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으로 인해 2018년 '무릎 꿇기' 제스처를 징계 사유로 정했던 미국프로풋볼도 플로이드 사건을 이유로 아슬아슬하게 타오던 외줄 위에서 내려와 징계 규정을 바꿨다. 미국축구연맹(USSF)도 "앞으로 무릎 꿇는 선수를 징계 대상으로 삼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사진=Gettyimages

세차게 불던 바람에 이젠 제법 온기가 있다. 인종차별적 진압을 당한 플로이드가 숨통이 끊어질 때까지 슬픈 눈으로 "살려 달라"고 울부짖었던 일이 있고 나서야 세상이 반응하고 있다. 일순간의 꿈틀거림으로 끝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스포츠투데이 노진주 기자 sports@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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