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던 날' 김혜수, 좋은 배우란 [인터뷰]

입력2020년 11월 15일(일) 21:40 최종수정2020년 11월 16일(월) 09:21
김혜수 / 사진=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제공
[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위로가 필요한 시기 운명처럼 만난 작품을 통해 상처가 치유되는 경험을 한 배우가 있다. 이제는 그 경험을 관객과 나누고 싶단다. 좋은 사람이 곧 좋은 배우라고 말하는 김혜수다.

김혜수는 1986년 영화 '깜보'로 데뷔해 어느덧 34년 차가 됐다. 그 사이 그는 영화 '얼굴 없는 미녀' '타짜' '도둑들' '관상' '굿바이 싱글' '국가부도의 날' 드라마 '국희' '장희빈' '한강수타령' '직장의 신' '시그널' 등 셀 수도 없이 많은 작품에 출연하며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이렇게 대중의 사랑을 받은 김혜수가 이번에는 영화 '내가 죽던 날'(감독 박지완·제작 오스카 10 스튜디오)로 돌아왔다. '내가 죽던 날'은 유서 한 장만 남긴 채 절벽 끝으로 사라진 소녀와 삶의 벼랑 끝에서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내민 무언의 목격자까지 살아남기 위한 각자의 선택을 그린다. 김혜수는 극 중 세진(노정의)의 죽음을 추적하면서 그의 감정에 깊이 공감하는 형사 현수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현수는 남편의 불륜으로 자신을 이루고 있는 세상이 부서진 인물이다. 극도의 불안과 상처로 점철된 마음을 안고 살아간다. 참 어려운 캐릭터다. 감정의 극한 상황을 계속 표현해야 되는 것이다. 김혜수는 "현수의 상황은 정말 힘들다. 누구나 다 그런 삶의 순간이 있을 거다. 우리 영화는 하필 그 순간에서 시작해, 상황이 계속 유지된다. 누군가의 삶에서는 한 기간이지만, 우리는 이 감정을 계속 유지해야 됐다. 쉬운 역할은 아니지만, 우리 영화는 참 그런 영화"라고 소개했다.

영화는 상처를 가진 이들이 공존하면서 서로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이를 통해 한층 성장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김혜수도 작품을 통해 치유받으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기대 없이 시나리오를 봤는데 나도 현수의 시선과 상황, 그리고 감정을 따라가다 보니 세진(노정의)을 들여다보게 되고, 상처를 느끼게 되더라. 또 순천댁(이정은)을 만나게 되면서 연대감을 느꼈다.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이 현실을 좀 더 직시하게 됐다. 그런 걸 보는 것만으로 정말 위안이 됐다. 참 이상하더라"며 "이런 시나리오에 공감하는 제작진, 스태프, 배우들이 모여 함께 느끼고 마음의 손을 잡은 것 같다"고 전했다.
김혜수 / 사진=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제공

다만 감정 위주의 영화들이 국내에서 잘 다뤄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 대해 김혜수는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는 "영화라는 건 관객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즐거움을 줘야 된다. 그게 스펙터클한 영상이 될 수 있고, 내 감성을 이입해서 따라가는 재미일 수 있다. 또 리얼리티 등 다양하다. 볼거리가 가득하고 흥미진진한 영화들을 경험한 관객들에게 느리고 서정적이고, 감정 위주로 따라가야 되는 영화는 힘들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업으로 하는 투자자 같은 경우, 조금 더 명확하게 관객을 유치할 수 있는 데 투자한다. 이런 현상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그럼에도 영화의 존재와 다양성을 만드는 입장에서 외면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영화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영화를 하는 사람이기에 스펙터클하고 관객과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영화를 하고 싶다. 하지만 다양성을 위해, 이 영화가 존재하길 바란다. 현실적으로 배우 혼자 만의 힘으론 되지 않는 일이다. 시기적으로 내가 이 영화를 최적의 컨디션일 때 만났고, 그래서 더 내 작품처럼 여겨졌다. 내가 느낀 감정과 위안을 나보다 더 힘든 사람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이 크다. 시나리오에서 느껴진 묵직한 위로를 제대로 전달해 몇 명의 관객에게라도 전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소박하지만 비장한 마음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은 이 영화가 나왔지만, 사실 투자가 어려웠다. 시나리오에 드라마틱한 반전, 자극적 소재, 스펙터클이 없다 보니 그런 것이다. 실제로 글의 일부를 수정하면 투자가 가능하다는 제안도 있었다. 그러나 제작진 배우들이 모두 한 마음이었기에 지금 이대로 나올 수 있었다. 모든 힘은 시나리오에 있다. 그렇게 출발한 글이었기에, 또 나도 시나리오를 보고 위안을 얻었기에"라고 덧붙였다.

영화는 세진, 순천댁, 현수의 관계를 통해 좋은 어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도 던진다. 김혜수가 생각한 참 어른은 무엇일까. 그는 "어른이라는 말 자체가 20살이 넘으면 일단 어른이라고 한다. 그런데 나는 기본적으로 나이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스스로 어릴 때부터 나이보다 조금씩 뒤처졌다고 생각했다. 늦었고, 느렸다. 사람은 자신만의 리듬이 있는데, 나는 늦었지만 나의 리듬에 충실했던 것 같다. 내가 어른이 돼서 어른으로 무언갈해야 되는 위치가 되는 건 부자연스럽다. 살다 보니 어쩌다가 좋은 어른이 해야 될 걸 하기도 한다"며 "다만 좋은 것, 따뜻한 것은 혼자 갖고 있지 말고 나누는 게 좋은 어른 아닐까. 좋게 느끼는 걸 주다 보면 상호 적으로 좋은 것 같다. 아무것도 아니게 보일지라도 소소하게 쌓이는 따뜻함이 있다. 그걸 주는 어른이 좋은 어른"이라고 설명했다.
김혜수 / 사진=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제공

김혜수는 좋은 어른에서 나아가 좋은 배우에 대한 생각도 전했다. 그는 "아주 어릴 때는 나 스스로도 삶에 직간접적인 경험이 부족했다. 굉장히 평범하게 자라다가 청소년기에 연예인이 되면서 삶이 편협해졌다. 누구나 얻어야 할 보편적인 걸 놓치고, 진짜를 받아들이기엔 미약하고 혼돈의 시기였다. 그때는 배우라는 게 얼마나 엄중한 일인지 몰랐다. 어른들이 다 이뻐하니까 현장에선 배우보다 애로 대하니까 그저 신났다. 그렇게 대학생이 될 때까지 철 없이 보냈다. 나도 내 자리를 찾아야 되는데 시기가 늦었다. 작품을 계속하면서도 책임감이 있는데, 그걸 몰랐다. 연기를 그저 취미 생활, 특별 활동하듯이 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그러면서 "더 이상 그렇게 하면 안 되는 시점이 오더라. 이걸 해내야 되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지 모르고, 어느 순간 뒤늦은 사춘기처럼 20대를 힘들게 보냈다. 30대가 되면서는 내가 배우를 계속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가 새롭게 시도들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워낙 많은 것들이 부족한 상태에서 해야 되니까 이것저것 해봤다"며 "매니저에게 물어서 연기 잘하는 사람은 평소에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도 물어봤다. 유치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제는 나의 결핍이 눈에 들어오더라. 일상성의 결핍, 그리고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면은 집중적으로 발전했는데, 어떤 면은 취약했다. 이런 게 느껴지니 많이 불안해졌다. 혼자 인생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무얼 해야 되나. 고민 끝에 인생을 그냥 충실하게 살자는 생각을 했다. 뭐가 됐건 주어진 것에 열심히 하고, 거기서 느끼고 배울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자 싶었다. 그렇게 충실하면 좋은 베이스들이 쌓이지 않을까"라고 설명했다.

김혜수는 "좋은 사람과 좋은 배우가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충격이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믿고 싶은 건, 내가 지향하는 건 훌륭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좋은 사람이 되는 거다. 인간적으로, 또 배우로 같이 성장하는 사람이고 싶다. 좋은 사람이 내 눈에는 더 좋고 훌륭한 배우로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작품을 통해 만난 이정은과 김선영을 참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김혜수 / 사진=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제공

좋은 사람이 곧 좋은 배우라고 말하는 김혜수는 평상시 일상을 공유했다. 그는 "평소에 하는 건 수시로 달라진다. 정말 소소하게는 못하던 바느질을 하게 됐을 때 기쁘다. 또 집에 친구들을 불러 수다 떨고, 내가 요리해 주는 것을 좋아한다. 수다의 즐거움을 뒤늦게 알았다. 이게 얼마나 소소하지만 큰 재미인지 알았다. 또 소규모로 만나서 문화적인 시간을 보내는 그룹이 있다. 영화, 음악 얘기를 나누는데 그 시간이 너무 좋더라"고 말했다.

또 김혜수는 독서의 즐거움도 전했다. 그는 "요즘에는 시집을 본다. 불현듯 내가 요즘 시집을 안 읽는구나 하고 느꼈다. 지난달에는 내가 좋아하는 분께 좋아하는 시집을 선물 받았다. 시를 읽으면서 위로를 받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도 했다. 내가 왜 시를 잊고 있었을까. 많은 글들이 있지만 시는 누군가가 나를 위해 써준 느낌이다. 이도 우리 영화와 일맥 하는 게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김혜수는 위로를 받는 방법, 위로를 주는 방법에 대해 진솔한 마음을 밝혔다. 그의 바람처럼 관객들이 '내가 죽던 날'을 통해 작은 위안과 감동을 얻길 기대한다.

[스포츠투데이 현혜선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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