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에만 의존하는 엘리트체육의 서글픈 민낯 [ST연중기획-한국체육, 새로운 100년을 위해⑥]

입력2020년 12월 14일(월) 16:22 최종수정2020년 12월 15일(화) 10:41
사진=Gettyimages 제공
스포츠투데이는 연중기획으로 '한국 체육, 새로운 100년을 위해'를 격주로 연재한다. '한국 체육, 새로운 100년을 위해'는 지난 100년간 화려한 성공 속에 가려진 한국 체육의 어두운 현실을 살펴보고,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는 한국 체육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예정이다.《편집자주》

[스포츠투데이 이상필 기자]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 한국은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세계최강국이었다. 두 번의 올림픽에서 금메달 1개와 은메달 1개를 수확했고, 세계선수권에서는 금메달 2개와 은메달 2개, 동메달 2개의 성과를 거뒀다. 또한 사대륙 선수권, 그랑프리 파이널 등 굵직한 대회에서도 여러 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놀랍게도 이 모든 성과는 김연아 단 한 명이 해낸 것이었다. '피겨 여왕' 김연아라는 세계적인 스포츠스타의 존재는 피겨스케이팅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기업들의 투자를 끌어모았다. 피겨 국제무대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위상도 상승했다. 김연아라는 한 명의 스타가 한국 피겨스케이팅에 미친 영향력은 그야말로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김연아가 은퇴한 뒤, 한국 피겨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김연아 키즈'로 불리는 선수들이 국제대회에서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기는 했지만, 예전처럼 국민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피겨 붐'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었다. 국민들의 관심이 멀어지니 기업들의 투자도 줄어들었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체조 요정' 손연재는 2012 런던 올림픽 리듬체조 개인종합 5위, 2016 리우 올림픽 리듬체조 개인종합 4위를 차지했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개인종합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2015 광주 유니버시아드에서는 3관왕에 올랐다. 손연재의 활약은 리듬체조 불모국이었던 한국에서 리듬체조에 대한 관심을 크게 제고시켰다. 그러나 피겨스케이팅과 마찬가지로, 리듬체조 역시 손연재가 은퇴하자 다시 국민들의 시야 속에서 사라졌다.

이밖에도 스타 개인의 인기 또는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서의 성과로 반짝 관심을 모았다가, 스타의 은퇴 또는 국제대회 종료 후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경우가 숱하게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이 같은 경우에는 반짝 흥행의 영향으로 증가했던 관심과 투자가 급속도로 감소하면서 오히려 이전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기도 발생한다. 스타와 국제대회의 성과로는 한 번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는 있지만, 이를 꾸준히 지속시키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좌석이 대부분 비어있는 피겨 경기장 / 사진=DB

▲ 스타, 성적에만 의존하는 엘리트체육의 서글픈 민낯
불과 몇 십년 전만 해도 대한민국은 체육불모지였다. 몇몇 인기 종목을 제외하고는 이렇다할 기본 인프라조차 갖추지 못했다. 인프라 개선을 위한 투자는 말 그대로 언감생심(焉敢生心)이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엘리트체육은 사실상 체육계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정답이었다.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소수에게 투자를 집중하며, 이들을 뛰어난 기량을 갖춘 선수로 육성시켰다. 이들은 국제무대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국민들의 관심을 모았고, 이는 체육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어느새 대한민국은 동하계 올림픽과 월드컵을 모두 개최한 나라이자, 올림픽 메달 집계 때마다 상위권에 자리한 체육강국으로 변모했다. 전 세계에서 펼쳐지는 한국 선수들의 활약은 국위선양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부작용이 드러났다. 당장의 결과를 내기 위한 효율적인 투자에만 집중하다보니, 정작 기초공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사상누각(砂上樓閣)의 성공이 됐다. 다음 세대의 스타를 키워낼 수 있는 인프라와 시스템은 여전히 요원하다. 무대 위의 스타들에게는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지만, 그림자 속에는 여전히 열악한 현실이 숨겨져 있었다. 스타 선수가 무대 뒤로 물러가면 대중의 관심은 빠르게 식었고, 체육계는 '개천에서 용 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엘리트체육의 성공은 스타들만의 성공이 됐을 뿐, 모두를 위한 성공이 되지 못했다.

양예빈 / 사진=대한육상연맹 제공

▲ 기존의 엘리트체육을 넘어선 새로운 구조를 만들자
지금의 구조에서 체육계가 국민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쉴 새 없이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고 세대교체가 이뤄져야 한다. 문제는 이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매년 출산률이 최하를 기록하는 등 사회 구조에서부터 변화가 발생하면서 선수 풀(Pool) 자체가 줄어드는 상황이다.

위험 신호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학교체육의 경우, 비인기 종목은 물론 인기 종목까지 선수가 부족한 상황이다. 팀 구성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다. 풀이 줄어드니 그만큼 재능 있는 선수들 역시 줄어들고 있다. 간혹 특출한 재능을 갖춘 선수가 나와 관심을 모아도, 정작 그 선수와 경쟁할 수준의 선수들이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특출한 재능을 갖춘 선수라도 성장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육상 샛별' 양예빈이 경기에 나서자 다른 선수들은 경쟁 자체가 되지 않아 모두 기권해버렸다는 이야기는 한국 체육의 위기를 여실히 보여준다.

때문에 이제는 새로운 구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스포츠를 접할 수 있는 인프라와 문화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풀 자체를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생활 체육을 통해 스포츠를 접하고 자신의 재능을 계발하는 사례들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또한 생활 체육의 정착은 굳이 스타와 좋은 성적이 아니더라도 일상 속에서 스포츠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이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들만의 스포츠'가 아닌 진정한 '우리의 스포츠'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새로운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생활체육은 말 그대로 생활 속에서 체육을 접할 수 있어야 하며, 그만큼 풍부한 인프라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체육 인프라는 아직도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인프라 구축 없이는 진정한 의미의 생활체육이 이뤄질 수 없다. 지속적인 투자와 관심,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한계는 앞을 가로막는 벽이지만, 그 한계를 넘어서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다. 이제는 엘리트체육의 벽을 넘어, 새로운 도약을 이뤄내야 할 시점이다.

[스포츠투데이 이상필 기자 sports@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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