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칼럼-김태훈의 불꽃]'LG의 야생마' 이상훈전(傳) -<8> 운명의 주사위

입력2018.04.17 06:30 최종수정2018.05.14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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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전에서 역투하는 이상훈 / 사진= 이상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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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 같은 존재는 보통 사람들이 쉽게 갈 수 없는 길을 가며 대신 꿈에 도전하는 사람들이다. 덕분에 우리는 안전한 일상 속에서 짜릿한 행복과 처절한 좌절 같은 인생의 재미를 맛본다. 그렇다면 우리는 불꽃 인생들을 오롯이 기억함으로써 그 빚을 갚아야 하지 않을까? 첫 번째 불꽃 인생의 주인공은 엘지의 야생마 이상훈이다.

8. 운명의 주사위



방황을 끝낸 이상훈이 마운드를 지키는 고려대 야구부는 1992년 내내 강력했다. 4월 봄철리그에서 우승한 데 이어 5월초 열린 대통령기 대학야구 대회에서는 한양대와 결승에서 만나 준우승을 기록했고, 5월말 실업팀과 함께 치른 백호기 대회에서도 4강까지 오르는 성적을 올렸다. 10월 가을철리그에서는 다시 결승에 올라 이종범이 맹활약한 건국대와 연장 11회까지 가는 혈투를 벌인 끝에 아쉽게 패해 준우승을 기록했다.

◆ 마지막 정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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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전에서 승리하고 환호하는 선수들 / 사진= 이상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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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상훈에게 이들 대회 성적은 크게 의미가 없었다. 그 성적으로 언론의 주목도 받고 프로 구단들의 표적도 되겠지만, 상훈의 관심사는 아니었다. 그것이 목표였다면 지난 2년간의 방황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굳이 상훈에게 목표가 있었다면, 그것은 '야구하는 것'이었고 '공을 던지는 것'이었다. 그거면 됐다.

그래도 의미 있는 경기가 하나 있었다면 바로 정기전이었다. 고려대와 연세대가 맞붙어 자웅을 겨루는 이 대회는 결과로서의 성적보다는 학교외 팀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감독도 선수도 정기전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랐다. 마치 한일전을 앞둔 국가대표처럼 상대팀을 꺾기 위해 팀의 모든 에너지를 조율하고 또 집중했다.

상훈이 고3 때 고려대에 비교적 일찍 합류하게 된 것도 정기전을 앞둔 합숙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팀은 정기전을 정점에 두고 스케줄이 움직였다. 상훈은 운 좋게도 신입생이던 1989년 정기전부터 마운드에 오르는 행운을 얻었다. 그 게임은 고대 에이스 박동희가 감독 착오로 일찍 강판되면서 2대3으로 패했다. 이듬해 1990년 정기전은 상훈이 선발로 나서 8회까지 책임져 3대2로 승. 이날 이기고 다시 숙소를 이탈한 사건은 앞에서 소개했다. 3학년이던 1991년 정기전은 연세대 에이스 문동환의 구위에 눌려 1대4로 패배했다. 이제 4학년 마지막 정기전이 남았다.

1992년 9월 25일 잠실야구장. 마운드에는 역시 이상훈이 섰다. 그답게 처음부터 공격적으로 던졌다. 초반에 실점해 0대1로 끌려갔지만 후반에 타자들이 힘을 내 3대1로 경기를 뒤집었다. 상훈은 이 스코어를 지키며 경기를 끝까지 책임졌다. 사사구 하나 없이 안타는 4개로 틀어 막았다. 투구 내용도 좋았고 경기 내용도 훌륭했다.

이날 경기는 상훈이 대학에서 오르는 마지막 마운드였다. 경기 내용 이상의 감흥이 없을 수 없었다. 승리의 순간 지난 2년간 방황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한여름 밤의 꿈만 같았다. 부산 광안리 백사장을 정처 없이 헤매던 그 청년은 과연 누구였을까? 지금 이렇게 마운드에 서서 강속구로 타자를 압박하는 투수 이상훈과 그때 그 청년은 과연 같은 사람일까?

이 시간이 오기까지 혼란의 시기를 견뎌준 어머니와 끝까지 기다려준 감독이 떠올랐다. 고마운 마음이 밀물처럼 밀려 들어왔다. 고대 야구부 1년 농사라는 정기전을 승리로 이끌고, 봄철 리그 우승도 이끌었지만, 그 정도로 과연 보상이 될까? 아무리 생각해도 부족했다. 상훈에게 그 시간은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마음의 빚이 됐다.

집에 돌아온 상훈은 어머니에게 "대학을 1년 더 다니고 싶다"고 말했다. 10년 전 중학교 1학년 때도 똑같은 말을 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신길화랑 팀을 위해 한 해 더 뛰고 싶어 했는데 대학 졸업을 앞두고도 같은 말을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상훈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학교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최남수 감독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어떤 방식으로든 갚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10년 전처럼 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이미 서울을 연고로 한 LG와 OB 구단이 이상훈을 잡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 주사위 여신
1992년 가을 프로야구 구단 프런트들은 그 어느 때보다 설레고 분주했다. 11월 5일로 예정된 대졸 신인 1차 지명 행사에 역대급 신인들이 즐비하게 등장했기 때문이다. 대전의 빙그레는 한양대와 국가대표 에이스로 활약하고 있는 구대성을, 광주의 해태는 건국대 내야수 이종범을, 대구의 삼성은 영남대에서 활약하다 상무에 입단한 양준혁을, 인천의 태평양은 단국대의 왼손투수 김홍집을, 롯데는 경성대 오른손 에이스 김경환을 미리부터 점찍고 있었다. 모두 연고지 고등학교를 졸업한 신인들이어서 선택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문제는 서울을 같이 연고지로 쓰는 LG와 OB였다. 두 팀이 선수 보는 눈이 달라서 다른 선수를 지명하면 문제될 게 없었다. 그러나 많은 경우 두 팀은 같은 선수를 지명했다. 상훈이 프로 시장에 나온 1992년은 더욱 그랬다. 대한야구협회가 집계한 1992년 종합 기록에서 상훈은 12승 2패로 다승 1위, 방어율은 2.39로 2위를 기록하며 '최고 투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서울에서 상훈과 비교할 만한 투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처럼 1차 지명 선수가 겹칠 때 두 구단은 1차 지명일 하루 전날 KBO 사무실에서 '주사위 던지기'를 해야 했다. 1985년부터 던지기 시작한 주사위는 1991년까지 일곱 차례를 거치며 5승 2패로 LG가 앞서고 있었다. OB는 1986년과 1989년 두 차례를 이겼지만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1986년에 지명한 박노준은 부진한 성적에 시달리다 해태를 거쳐 쌍방울에 가서야 3할대 타율을 기록했고, 1989년에 선택한 왼손투수 이진은 부상에 시달리다 공 한 번 제대로 던져보지 못하고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반면 LG는 김건우와 노찬엽, 김기범, 김동수, 송구홍 등 선택하는 선수마다 현역에서 큰 성과를 올렸다.

불운에 시달리던 OB 프런트는 엄청나게 예민해져 있었다. 1차 지명이 있기 하루 전인 11월 4일 양재동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실에 모인 양 구단 프런트는 처음부터 날카로운 신경전을 펼쳤다. 2년 연속 패배한 OB 프런트가 먼저 방법을 바꾸자고 제안했다. 재미를 봐온 LG 프런트가 고분고분 받아들일 리 없다. 합의가 어려워지자 KBO가 중재에 나섰다. 각자 선호하는 선정방식을 내놓고 주사위 두 개를 한 번씩 던지자는 거였다. 그런데 OB는 여기서도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9대7로 LG 승리. 이젠 본게임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LG가 주사위 던지기에 늘 운이 따라줬지만, 운만을 바랄 수는 없었다. 좌완 파이어볼러 이상훈이 걸려 있는 판이었다. 그해 초 LG트윈스 대표이사로 취임한 강정환 사장이 결재권을 갖고 행사하는 첫 번째 인사였다. 강사장에게도 사활이 걸린 이슈였던 것이다. 그 마음이 얼마나 절박했던지 강사장은 주사위 던지기만을 위해 특별히 절에 가서 불공을 올리기도 했다.

예민하기는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소셜미디어가 발달한 지금이야 특종 경쟁이 의미 없어졌지만 당시만 해도 어느 신문이 특종을 하는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상훈을 두고 양 구단이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는 만큼 신문사들도 첫 기사를 폼 나게 송고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했다.

언론사 중에서는 스포츠조선이 제일 발이 빨랐다. 주사위가 던져지던 그날 아침 평소 알고 지내던 스포츠조선 기자가 상훈을 신문사 편집국으로 납치(?)해갔다. KBO 사무실에서 결과가 나오자마자 속보와 인터뷰 기사를 내야 하는데 그때 필요한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상훈은 그곳에서 LG 모자를 쓰고 한 번, OB 모자를 쓰고 한 번 사진을 찍은 뒤 미리 인터뷰에 응했다. 구단 이름만 빠진 인터뷰 기사는 주사위가 던져지기 전에 이미 작성돼 있었다.

오전 11시 10분, 드디어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주사위를 두 개 쥐고 세 차례 던져 합산한 점수로 우열을 가리는 방식이었다. 1차전은 8대10으로 OB 승. OB 프런트는 한껏 고무됐다. 그러나 2차전에서 5:2로 LG 승. OB 프런트가 ‘1, 1’을 던진 것이다. 그러나 LG도 좋은 점수가 아니었기에 2차전까지 1점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승부는 마지막 3차전에서 갈리게 됐다. 그런데 3차전도 8:4로 LG 승. 총점 21대16으로 이상훈은 LG의 품에 안겼다. OB는 건국대 내야수 추성건을 지명했다.

지명을 받은 후 자신감이 충만했던 상훈은 구단에 신인 최고 대우를 요구했고 LG트윈스도 흔쾌히 호응해 2억원(계약금 1억 8,800만원, 연봉 1,200만원)이라는 역대 최고액으로 입단 계약을 체결했다. 1년 전 정민태가 태평양에 입단할 때 받은 1억 7,200만원보다 2,800만원이 많은 액수였다.

상훈의 역대 최고액 계약 소식이 알려지면서 다른 구단들도 연봉 협상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치렀다. 같은 좌완으로 빙그레의 지명을 받은 구대성과 태평양의 김홍집도 자기 구단에 이상훈급 대우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끝내 상훈과 같은 액수를 받지는 못했지만 '억대 계약금' 왼손 투수로 나란히 이름을 올리며 더 화려해진 1993년 프로야구를 예고했다. 상훈은 1992년 12월 11일 LG의 투수와 포수 16명이 참가하는 체력 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경북 울진의 백암온천으로 떠났다. 입단 후 첫 훈련이었다.

9편으로 이어집니다.



'LG의 야생마' 이상훈전(傳) - ① 소년, 야구를 만나다 다시보기

'LG의 야생마' 이상훈전(傳) - ② 야구가 즐거웠던 신길화랑 다시보기

'LG의 야생마' 이상훈전(傳) - ③ 폭풍우의 시작 다시보기

'LG의 야생마' 이상훈전(傳) - ④ 비가 내리면 다시보기

'LG의 야생마' 이상훈전(傳) - ⑤ 폭발하는 물음표 다시보기

'LG의 야생마' 이상훈전(傳) - ⑥ 고대 빠삐용 다시보기

'LG의 야생마' 이상훈전(傳) - ⑦ 스포트라이트 다시보기






김태훈 작가 sports@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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