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칼럼-김태훈의 불꽃]'LG의 야생마' 이상훈전(傳) - <17> 트레이드

입력2018.05.17 06:30 최종수정2018.05.17 06:30
[스포츠투데이 정성래 기자] 불꽃 같은 존재는 보통 사람들이 쉽게 갈 수 없는 길을 가며 대신 꿈에 도전하는 사람들이다. 덕분에 우리는 안전한 일상 속에서 짜릿한 행복과 처절한 좌절 같은 인생의 재미를 맛본다. 그렇다면 우리는 불꽃 인생들을 오롯이 기억함으로써 그 빚을 갚아야 하지 않을까? 첫 번째 불꽃 인생의 주인공은 엘지의 야생마 이상훈이다.

17. 트레이드



"나를 대타 요원으로 쓴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7월에 벌써 이런 저런 선수들을 자르라고 하더군. 그런 법이 어디 있나?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이상 안 된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 결국 내가 나간 뒤 그 선수들이 다 옷을 벗었어. 상훈이도 그렇고 유지현, 김재현도."

은퇴 후 일간스포츠에서 잠시 인터뷰어로 활동하던 상훈을 만난 이광환 감독은 2003년 당시를 이렇게 떠올렸다. 2002년 혈투를 치르며 적지 않은 전력 손실을 입었지만 이감독과 선수들은 4강 주변에 머물며 나름 선방을 하고 있었다. 시즌 한복판이었던 7월 LG 구단은 이감독에게 설계도를 하나 내밀고 그대로 실행해줄 것을 요구했다. 팀의 주축이었던 선수 세 명을 내보내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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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한국야구명예전당 앞에서 이광환 감독과 함께(미국 출국 전 / 사진= 이상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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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장 이상훈

2003년 시즌을 시작하며 선수들은 만장일치로 상훈을 주장으로 추대했다. LG는 감독이 지명하지 않고 선수들이 투표로 주장을 추대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때 상훈은 팀내 최고참이기도 했지만 2002년에 보여줬던 감동적인 카리스마를 동료 선수들이 높이 평가한 것이었다.

사실 투수에게 주장을 맡기지 않는 것이 보통 야구팀의 관례였다. 워낙 예민한 보직이기 때문에 전체를 아우르고 살펴야 하는 과욋일은 맡기지 않았다. 그러나 상훈은 특별했다. 본인이 스타 투수였지만 언제나 팀을 우선으로 생각했다. 팀을 위해 솔선수범했고 또 먼저 희생했다. 선수들도 그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기적 같이 멋진 경기들을 치러낸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LG 주장 이상훈이 갖는 위상은 여느 팀 주장과 사뭇 달랐다. 2002년에 보여줬던 카리스마가 그대로 이어지면서 선수들을 결집시키는 구심력을 발휘했다. 본인부터 워낙 철저하게 루틴을 지키며 훈련에 임했다. 혹시라도 선수단 분위기가 흐트러지면 직접 나서서 수습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2003년 3월 13일 부산에서 열릴 롯데와 시범경기를 앞두고 LG선수단은 진주 연암공대 운동장에서 전술훈련을 하고 있었다. 15명의 1군 후보 투수들은 러닝으로 이날 훈련을 마무리하는 스케줄이었다. 선발조와 불펜조로 나뉘어 30, 50, 70미터 왕복 달리기를 하는 방법이었다.

이날 훈련 분위기가 영 어수선했다. 오후 1시로 예정된 훈련 시간을 맞추지 못해 일부 투수들이 양삼문 투수코치에게 한 차례 혼이 났다. 실제 러닝도 설렁설렁하는 분위기였다. 보다 못한 양코치가 투수들을 향해 또 쓴소리를 했다. 오후 훈련에 두 차례나 코치에게 지적을 받은 것이다. 훈련을 마치고 휴식 공간에 먼저 도착한 상훈이 운동장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똑 바로 못해? 집합!!"

화들짝 놀란 투수들이 일제히 상훈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후배 투수들 앞에서 상훈은 호통을 쳤다. 야구는 코치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위해서, 그리고 팀을 위해서 하는 거였다. 본인이 그렇게 훈련했고, 또 그 모습을 후배들이 지켜봐왔기에 상훈의 말 한 마디가 갖는 무게는 남달랐다. 코치에 버금가는 비중으로 팀 기강을 바로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렇게 이광환 감독과 이상훈 주장의 조합은 선수들은 물론 팬들에게도 LG야구의 부흥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 충돌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구단은 처음부터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구단은 이감독에게 고참 선수 세 명, 즉 유지현과 김재현, 그리고 주장 이상훈까지 내보라고 요구했다. 이광환 감독은 구단 사무실에서 고성까지 질러가며 강하게 반발했다. "내가 감독으로 있는 한 절대 안 된다"며 배수의 진을 쳤다.

구단은 물론 팀 리빌딩 계획을 세울 권리가 있고, 보통은 감독 교체를 통해 그 계획을 실현한다. 그리고 구체적인 리빌딩 프로그램은 대개 바뀐 감독이 전권을 쥐고 주도한다. LG가 김성근 감독을 해임하고 이광환 감독을 영입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 그림을 예상했다. 이감독이 전권을 쥐고 LG 야구 재건을 주도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이감독 스스로 '대타 요원'이었다고 느꼈을까?

이감독도 팀 리빌딩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구단이 지목한 세 선수는 이감독 판단에 팀의 기둥들이었다. 기둥을 교체할 수 있지만, 하더라도 하나씩 균형을 맞춰가며 해야지 한꺼번에 없애면 안 된다는 것이 이감독의 생각이었다. 구단의 교체 방침은, 돌이켜 보면 김성근 감독을 해임할 때부터 이미 세워져 있었던 것이었다.

구단은 왜 그 세 선수를 지목했을까? 특히 주장을 맡고 있던 상훈을 구단은 왜 교체 대상으로 지목했을까? 2002년 미국에서 상훈의 한국 복귀를 주도한 주체가 LG구단이었고, 또 팀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과정에 엄청난 공헌을 한 존재인데, 2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왜 내보내려고 한 것일까? 김성근 감독이 해임됐을 때 인터넷에 올린 장문의 글 때문이었을까? 1996년 이광환 감독이 경질됐을 때 선수협을 만들겠다고 전국을 돌아다녔던 전력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당시 팀이 주장 이상훈을 중심으로 너무 단단하게 결속돼 있어서 LG가 추구하던 '강한 프론트'를 구현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판단한 것일까?

상훈을 내보내려는 움직임은 이광환 감독의 완강한 반대로 중단됐지만, 그 계획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2003년 시즌이 끝나자마자 이감독은 성적 부진을 이유로 1군 감독에서 물러나 2군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다. 팀 리빌딩을 명분으로 영입한 감독을 1년만에 바꾼 것이다. 1992년 처음 이감독을 영입했을 때 LG구단은 3년을 기다려 우승이라는 열매를 얻었지만 11년 뒤인 2003년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광환 감독에게 팀 리빌딩을 맡길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2003년 10월 구단은 해태 출신의 이순철 1군 작전코치를 1군 감독으로 임명했다.

◆ 기타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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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드가 발표된 날 기자들에 둘러싸여 인터뷰하는 이상훈(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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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환 감독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한 조치들이 이순철 감독 첫 해에 모두 이뤄졌다. 2004년 1월 상훈이 SK로 트레이드됐고, 11월에는 김재현이 FA 자격을 얻어 역시 SK로 이적했다. 유지현은 이적하지는 않았지만 2004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고 코치로 전업했다. 상훈이 트레이드되는 과정에는 2002년 언젠가부터 마련된 이런 '큰 그림'이 작동한 것이었다.

감독이 교체되자마자 희미했던 그림이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먼저 주장의 자질을 문제 삼는 풍문이 돌았다. 후배들에게 너무 엄해서 선수들이 힘들어한다는 내용이었다. 풍문은 풍문으로 그치지 않고 차기 주장을 내정하는 기사로 진화해 언론에 등장했다. 1년 전만 해도 팀 기강을 바로 세우는 믿음직한 주장이라고 평가됐는데, 순식간에 후배들을 괴롭히는 난폭한 주장으로 둔갑해버렸다.

곧이어 기아의 마무리투수 진필중을 영입한다는 기사가 떴다. 상훈은 2003년에도 30세이브를 올리면서 구원 부문 1위를 기록했다. 마무리 투수로서 2002년에 이어 흠 잡을 데 없는 성적을 올렸다. 그런데 구단은 진필중 카드를 꺼내들었다. 물론 '더블 스토퍼'라는 개념이 이미 있었고, 상훈도 그것이 감독의 뜻이라면 마다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보도들이 상훈을 한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2004년초 체력 훈련이 시작될 때였다. 보통 트레이너가 선수별 스케줄을 짜서 움직인다. 상훈은 베테랑이었고 오래 전부터 자기 운동에 철저한 루틴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겨울 훈련은 늘 개인적으로 했다. 팀도 트레이너도 상훈을 믿었고 온전히 맡겼다. 그런데 어느날 상훈은 신문에서 "운동하지 않는 선수, 훈련에 불참하는 선수"가 돼 있었다. 팀 훈련장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어느새 상훈은 '제멋대로'이고, '나태'하고, '돌출 행동'하는 선수라는 꼬리표가 붙기 시작했다.

이즈음 상훈은 기사로 자기 소식과 팀 사정을 접하고 있었다. 현역 선수였고, 심지어 주장이었는데 신문을 보고서야 구단 돌아가는 사정을 알게 되는 처지라니. 걸핏하면 상훈은 스포츠신문 1면을 장식했다. 본인이 등장하는 기사인데도 기사를 보고서야 전후 사정을 알게 되는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구단의 의도를 느낀 상훈이 신임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대한 정중하게.

"혹시 신문에 나온 대로 제가 팀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시면 트레이드하셔도 좋습니다. 진심입니다."

이 발언은 며칠 뒤 기타와 엮여서 언론에 등장했다. 기사는 "기타 치지 마라"는 이순철 감독의 지시에 상훈이 "사생활이다. 기타 못 치게 하려면 차라리 트레이드시켜 달라"고 대든 것으로 서술됐다. 신임감독과 고참 선수간에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상훈은 '얽매이는 걸 싫어하고 자유분방한 스타일'의 캐릭터로 등장한다. 신임 감독은 팀 리빌딩을 위해 규율과 팀워크를 세우려고 하는데 이상훈이 부상으로 쉬는 동안 빈 라커룸에서 기타를 치는 등 돌출행동을 해 팀워크를 해친다는 내용이었다. 심지어 '항명'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기타가 스캔들처럼 연일 언론을 장식할 때 정작 이순철 감독은 한국에 없었다. 재활선수 훈련을 위해 괌에 머물고 있었다. 다시 말해 기타 문제가 터졌을 때 이감독도 언론을 통해서만 소식을 접한 것이다. 언론에서 기타 문제가 지나치게 커지면서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이감독은 괌에서 입국하기도 전에 언론의 입을 빌어 '결별'을 통보했고, 팀은 하루만에 상훈의 트레이드 방침을 발표했다. 2004년 1월 13일이었다.

트레이드는 전광석화처럼 진행됐다. 이튿날인 14일 상훈의 SK행이 확정됐다. SK의 조범현 감독이 "전화 두 번만에 결정이 났다. 나도 어리벙벙하다"고 말할 정도로 순식간이었다. 그러나 상훈 같은 대형 선수가 어떻게 단 사흘만에 '결별 통보 - 방침 발표 - 트레이드 완료'로 이어질 수 있는지 질문하는 언론은 없었다. 그저 기타에 대한 집착 때문에 팀에서 쫓겨나는 고집불통 선수를 신기해 하며 기웃거리는 구경꾼들 뿐이었다.

상훈은 이 모든 과정에서 입을 다물었다. 특히 언론 대응을 일체 하지 않았다. 없는 사실(라커룸에서 기타 연주 같은)이 입방아에 올라도 침묵했다. 언론은 이미 프레임을 짜고 있었다. 상훈의 이미지도 문제아 정도로 고착화돼 있었다. 상훈은 정해진 방향으로 거대한 힘이 움직이고 있다는 걸 이미 느끼고 있었다. 상훈 혼자로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트레이드가 단행된 14일만큼은 언론 인터뷰를 피할 수 없었다. 상훈은 당시 언론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타가 문제의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근본적인 이유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지난 시즌이 끝난 뒤부터 트레이드 얘기가 나돌아 트레이드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이순철 감독을 직접 만나 오해를 풀지 못한 채 트레이드돼 아쉽습니다. 그동안 물의를 빚은 데 대해 팬들에게 사과드리며, 이감독에게도 죄송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팀에서 나를 부담스럽게 느낀다면 차라리 먼저 트레이드 얘기를 꺼내는 게 낫다고 말한 것뿐입니다. 트레이드는 구단측에서 먼저 추진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상훈은 줄무늬 유니폼을 벗었다.

18편으로 이어집니다.


'LG의 야생마' 이상훈전(傳) - <1> 소년, 야구를 만나다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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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 작가 sports@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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